내세 After Life / 2020.7.1-10.1 (31:43)
감염되는 질병의 확산과 시스템의 붕괴, 사람들의 존재 불안과 불화가 빠르게 범람하고 있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생존할 수 없어 다른 곳에서 삶을 찾고자 했다. 정반대인 인구소멸 현상을 겪고 있는 지역에서 빈집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었고, 나는 '내세 마을'이란 곳에 머물 수 있었다. 내세에서 바라본 모든 것은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계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나 또한 이곳에서 살아가며 나의 내세(After Life)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 영상은 그 시간이 담긴 느린 그림과 느린 음악이다.
Interview (Korean Cultural Centre UK)
Q. 내세 작품은 픽션이 아닌 작가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져 만들어졌는데요,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 및 그곳에서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성장하며 잦은 이사를, 그리고 예술가로서 여러 장소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에서 활동해야 하는 강박을 갖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 강박이 익숙한 장소에서 너무 빠르게 사라지는 것들을 매일같이 보게 되니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나라는 존재도, 나의 예술도, 그런 흔들림에서 휩쓸릴 것 같았어요. 시스템의 질서와 환경이 개인에 상태에 미치는 힘이 가속화되고 커지는 것에 늘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 같아요. 주장의 강도마저 자극적이어야 들리는 시끄러운 곳에서 더 이상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떠나서 다른 풍경을 보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야로 작업을 하고 있더군요. 공백의 환경이 되었을 때, 그것을 나에게 맞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을 담았습니다.
Q. 세상의 속도감과 복잡함에 저 또한 감당하기 힘겹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작품이 저에게는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요. 동시에 현실도피적(Escapism)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도피는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남이라는 의미에서 시스템을 살아가는 개인에게 중요한 상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탈피는 현실의 규격과 질서, 그것에 영향받는 개인의 상태를 거리감을 두고 볼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자신을 구성한 것들을 멀거나 감지되지 않는 거리에서 다른 감각을 작동시키며 새로운 시야와 감각으로 자신의 상태를 떠올려 보는 것. 결국 그럼에도 돌아왔을 때, 여러 거리감의 시야와 다른 호흡, 다중 감각을 경험한 개인이 살아가는 다음 삶(After Life)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내세마을에서 작업하시면서 특별히 인상적인 에피소드나 아이디어들이 있었을까요?
하필 도착한 곳의 마을 이름이 ‘내세(川世,천이 흐르는)마을’이었고, 낮은 인구밀도의 노령화와 느린 풍경에서 자연스럽게 ‘내세(來世,다음 생)’를 떠올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집에서 살던 분은 제가 머물던 시점에서 1년 정도 전에 돌아가셨더라고요. 시골에는 점점 그런 집이 늘어가고 있는 상태였고요. 작품에서 잘 쓰지 않던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집의 창과 뒷문에서 보이는 것들을 매일 촬영했는데, 마을을 떠나며 주민들과 퍼포먼스도 하고, 마을 단체 티셔츠도 만들어 드리고, 집에서 작품 상영회를 했는데요. 그분들과 함께 그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Q. 이번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점이 배경 음악이 아닐까 싶은데요, 음악을 만드는 것이 미술 작가로서 어떻게 매체로서 혹은 장르로서 작용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작가에게는 드로잉이 취미인 것처럼, 저는 머무르는 곳에서 나만의 배경음악을 만드는 것이 취미입니다. 그것을 함께 듣는 행위를 포함해서요. 형상화된 이미지와 영상이 배경의 역할을 할 때도 많습니다. 저는 음악을 공부하진 않았지만, 소리라는 파장의 조화를 떠올리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제가 ‘미술’ 작가라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를 수용하거나 연결하는 장르로서 이곳이 조금 더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Q. 작가님에 대해서 조금 접해본 바 있는 관객들에게 이번 작품은 작가님의 기존 작품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기존에 다소 수행적이고 참여적이고 직설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하셨다면, 내세 등 최근 작품들의 작업 느낌과 방식으로 변화된 이유나 의도가 있으실지요?
여전히 현장과 수행(퍼포먼스), 그리고 참여와 직접적인 것들이 존재하지만, 소리의 조화를 떠올리는 것처럼 각 장소와 환경(시스템)에 개인의 표현을 드러내는 화법과 온도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이 ‘동의할 수 없음을 주장’하거나, 혹은 ‘환기를 제안’하며 운동성이 펼쳐지는 것을 구조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에너지를 발휘했을 때, 경직되는 서로의 주장, 또는 묵살, 환기의 거절과 질식을 목격하며 스스로도 곪아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것이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것이 아닌 사람들에게 들려지는 음악(조화)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