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100주년 기념 사랑과 평화 페스티벌 / Performance / 2013
 

" 과거 어떤 전쟁이 일어났었고, 전쟁을 멈추자고 약속한지 100년이 지났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모두 죽었고, 분단이 살아남았다. 국가와 이념이 살아남았고, 무기와 독재자의 자녀들이 살아있으며 그에 영향 받아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 그리고 아무 영향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의 자손들이 살아있다. 사람들은 100년이라는 특별한 숫자를 여전히 좋아했고 기념하기로 결심한다. 늘 그랬듯이. " 지지부진한 상태의 국가와 난무하는 축제의 무정체성을 겨냥하며. _밀리터리안 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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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정전 60주년 기념 평화예술축제' 현장 (백령도, 인천아트플랫폼_2013)에서 내부 비평적 가상의 축제로 공연되었다.​ 그 외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_(산울림 소극장_2014), 악산밸리페스티벌_(한강_2014)에서 공연 되었고, <200주년을 위한 축제부스>가 'Super Romantics' (대구예술 발전소_2014)에서 전시되었다.

 Exhibition View 

 Poster 

" 차지량은 미래를 기념하고자 한다. <정전 100주년 기념 사랑과 평화 페스티벌>은 정전을 상정하고 통일을 유보시킨다. 작가는 휴전 상태가 100년이 지속된 미래를 직사하며, 이념과 분단, 그리고 국가와 정치적 대립각이 존속하는 미래를 기념하고자 한다. 기념은 과거와의 매개가 필연적이다. 즉, 연대기적 역사주의 내부에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인 ‘기념’이란 행위는 과거 없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전 100년 후를 기념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지 않을까? 연대기를 폐기하고 시간을 압축하여 재배치하는 방식은 오히려 현재의 시간상을 선명히 보여준다. 원근적 시간 없음은 역설적으로 시간의 이행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의 이행성은 남북 헤게모니 장악의 수단이자 패자의 역사를 복구하고 해방시키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는 양가적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함몰된 통일이란 역사는 폐기물처럼 북한을 삭제할 것이다. (역사의 조립과 폐기에 냉소할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시대가 있을까?) 그러나, 북한의 영혼은 한반도의 구천을 헤매다 정치적 이미지로 소환되어 언제나처럼 무력하게 소비될 것이다. 북한은 복고 스타일과 같은 시대의 심미적 대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시비를 따지기 힘든 일이다. " [출처] 코레아 우라! | Critical 게시글_이용준 http://www.critic-al.org/2017/01/02/koreaura/

 

" 정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유사 SF적인 페스티벌을 기획하는데 정전 60주년에 진행되었던 이 작업은 기념비적인 시간에 대한 냉소를 보인다. 이미 지나간 기억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소급하고자 했던 분단 1세대의 예술 운동들은 R.A.T.M과 서태지와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버무려진 북한의 짤들의 현란함에 치여 처참하게 와해된다. 이것은 ‘잃어버린 고향으로서의 북한’과 같은 서사들이 생명력을 잃어버렸을 때 등장한 새로운 유토피아적 전략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기억의 소급작용을 통해 역사를 미지의 페이지로 넘기고자 하던 그들의 시도와 반대로 여기에서는 그런 열망 자체에 대한 의심이 더 짙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러한 역사적 기억의 반복이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를 성토하며 그러한 전체주의적인 기억하기 행위를 패러디한다. 영화 ?코리아?에서부터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광주 비엔날레 작업에 이르기까지, 남북의 평화적인 대화에 대한 클리셰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탁구대는 이 작업의 냉기를 더욱더 가속화 시킨다. " [출처] 북향 조감도 | 격변! 미지로부터 코레아 도록 리뷰_주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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