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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 주거] ‘뉴 홈리스’ 세대의 ‘뉴 홈’을 찾아서 _ 이영롱

 

“<new home>은 도시계획에 관여하지 않은 세대가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여 뉴 홈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이다”

 

차지량 작가는 인천의 레지던시를 ‘뉴 홈’ 삼아 머물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 겸 ‘home’에서 대략 1시간 30분에 달하는 <뉴 홈 프로젝트>(이하 <뉴 홈>) 영상을 연달아 시청하고서 인터뷰를 시작하기로 한다. 영상은 크게 세 단락으로 이루어져있다. 말끔하게 정돈돼 내일 당장이라도 들어와도 될 새 주인을 기다리는 관악구의 다세대 주택, 인천 주안에 위치한 아직 도배 장판나 에어콘도 설치되기 전의 미완성 원룸, 그리고 바다를 매립해 만든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신도시에 뜬금없으리만큼 으리번쩍한 고층 아파트. 그곳에 일군의 젊은이들이 스며들어 하룻밤 동안의 점거로 일시적 집을 꾸린다. 야광봉과 돗자리로 내 구역을 표시하고, 취향과 선호대로 오디오, 책장, 침대(라고 쓰인 종이)를 배치하여 ‘나만의 공간’이 거기에 만들어진다. 입주자들은 그렇게 내 공간을 만들고, 소리와 냄새와 빛을 끌어들여 차가운 콘크리트 상자인 ‘house’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이 집은 그들에게 단 하루만 가능한 집이다. 아침이면 이들은 간밤에 잠을 자고, 샤워를 하고, 고기를 구워 먹고, 수다를 떨고, 마치 내 집처럼 기거했던 이 집을 떠나야 한다.(‘이사’) 이것이 하루 밤 동안 이들이 만들었던 ‘뉴 홈’이다. 하루 동안 머물던 이 집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수많은 집들이 도시를 빽빽하게 채우는 동안 그 결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못한 ‘뉴 홈리스’ 세대들은, 이 집을 떠나오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쓸쓸했을까, 부러웠을까, 슬펐을까, 후련했을까, 어서 떠나고 싶었을까? <뉴 홈>은 이와 같은 참여 퍼포먼스 뿐 아니라 이동식 공연, 여행, 전시 등의 일련의 행사들로 이루어진, 2년에 걸친 프로젝트다.

 

그가 스스로 속하기도 한 (청년) 세대와 ‘집’을 함께 이야기하며 또 같이 머무는 <뉴 홈>의 여정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차지량 작가를 찾아갔다.

 

Q 먼저 자기 소개와, 이제까지 해왔었던 작업들도 소개해주세요.

 

이름은 차지량이고, 주로 작업은 동시대 안에서 고립된 시스템들에 관심이 있구요. 그런 시스템들을 개인이 겨냥하고, 혹은 그 내부자가 스스로 발언하는 식의 구조를 띤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까 보셨던 <new home 프로젝트> 전에는 <일시적기업>이라는, 대한민국 기업 질서를 겨냥하는 개인들에 관한 작업을 했었구요. 그 전에는 <세대독립클럽>이라는 작업을 했어요. <일시적기업>도 그렇고 <세대독립클럽>도 그렇고 연단위 프로젝트로 진행됐던 작업들인데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도시 질서나 혹은 세대론에 관련된 작업들이었던 것 같구요. 최근에 참여하는 프로젝트들을 작업하고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작업들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거나..) 일반적인 질서들 있잖아요, 작업을 하는 사람도 그렇고 대학에 다니는 사람도 그렇고 혹은 미술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그렇고, 혹은 고등학생이라면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그렇고.. 저도 그런 일반적인 질서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던 시기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조금은 어떤 환경마다 영향을 받았는지, 그 질서들에 갈증을 느끼게 되고 그 시스템 안에서 느끼게 되는 갈증과 여러 가지 발언들을 하는 것들이 저에게 있어서 작업을 출발하게 된 계기가 된 거 같기도 해요. 그래서 가장 첫 번째 했던 개인전은 <이동을 위한 회화>라는 프로젝트였는데, 지방 소도시에서 올라온 한 인물이 주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서울 혹은 도시에서 그 동네마다의 상징성들을 부여해서, 여러 가지 해프닝들을 벌어지는 상황을 만들었거든요. 그 전시에서는, 명동에서 어떤 상업공간, 창고 같은 데에 어떤 미대생이 거주를 시작하면서.. 이때까지는 참여 프로젝트라기 보단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작업들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공간 설치를 하고, 드로잉들이 있기도 했었고. 명동, 동대문, 인사동, 홍대.. 여러 지역들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서, 해프닝들을 벌이고. 동세대 안에서의 갈증을 작업하는 게 출발이 됐었던 거 같아요. 그 때는 제 주변의 지방 출신 친구들이 많기도 했었고, 그런 주류 시스템으로 가기 위한 단순한 질서들이 있는 걸 알게 됐고, 그런 것에 대한 작업들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Q. 작업을 시작 하게 된 계기들이.. 그런 기존의 질서, 틀 이외의 것들을 생각하게 되면서라고 하셨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어떤 경험 같은 것들이, 그 사이에 있었던 건가요?

 

참여정부 때.. 효순 미선 장갑차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 때 대학생이었어요. 2002년.. 그 문제에 있어서 동의하지 않는 것들, 화가 나는 것들 때문에 시위 같은 것에 참여했었다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사람들이 단체로 다 명동에서 용산 미군기지 앞에까지 가게 됐는데, 저도 거기까지 갔던 거에요. 그런데 그 중에 키도 크고 그래서, 맨 앞에 서게 됐어요.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다는 게 맞는 거 같애요. 그러다가 전경들과 대치를 하다 제가 갈비뼈가 나갈 정도로 맞았는데 그걸 어떤 카메라맨 아저씨가 구해준 거에요. 난 누군가를 때리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 때 되게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애.. 물론 이 안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담론들도 있는데, 뭔가...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어떤 현장에서 드러난 극단만이 부딪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러고 나서 여러 가지 작업도 하고 군대도 갔다 오고 나서, 좀 더 고민이 됐던 거 같은데. 그 시기의 감상이 저에게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 <세대독립클럽>이라는 작업에서 모임의 문화, 온/오프라인 광장의 시각 이미지 같은 것들을 변칙적으로 사용하고, 그걸 때로는 교란하기도 하고, 뭔가 상징성을 전복시키기도 하는 그런 작업을 하기도 했거든요. 촛불들이 모이는 곳에 다른 식의 빛을 교란시키거나, 혹은 다른 오브제들끼리의 교환을 통해서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모색하거나. 정치적 사안이 아닌 것이긴 했지만, 그런 모이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그런 실험들을 해왔던 거 같아요.

 

Q. 말씀해주신 그런 경험들이 개인적인 충격, 혹은 자극이 되었던 거 같네요. 그럼 그 이후의 작업을 하면서도, 사회적인, 정치적 주제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셨던 건가요?

 

대한민국 안에서 정치적인 역할자들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는 거 같아요. 그보다는 개인이 정치성을 띠는 것, 그리고 개인에게 정치적인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들, 개인의 가능성의 또 다른 부분으로 발화되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 관심이 더 커졌던 거 같고, 그런 기대감만이 존재했던 거 같아요. 제 작업들이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의 이유도 그래서였고.. 지금까지 해왔던 프로젝트들은 일부러 느슨한 커뮤니티들을 유지해온 채 작업했던 거 같아요. 이번 <뉴 홈> 작업도 일종의, 말하자면 단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지만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면서.. 개인이 어떤 부분으로 발휘 될 수 있는 것을 염두 해두고 작업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해요. 그런 저의 경험에서 온 것일 수도 있고.

 

Q. 그럼 <세대독립클럽>, <일시적기업>, 그리고 최근의 <뉴 홈>까지 지금의 우리 세대, 88만원 세대라고 불리기도 하는 ‘청년 세대’ 혹은 ‘세대’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으신 거 같은데요.

 

저와 전에 같이 하셨던 작업 <옆 사람>도 그렇고[차지량 작가와 인터뷰어는 2010년에 <옆 사람>이라는 전시의 일환으로 진행됐던 단행본 작업에 함께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프로젝트 작업을 하기 전에도 사실 제 작업들은 그런 ‘옆 사람’과 관련된 작업들이었거든요. 저기 있는 그림들[책장 위에 놓여있던 그림들]도 다.. 그런 면에서, 주변 친구들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업들이었는데. 저 그림 같은 경우에는, 같이 밥을 못 먹어서 같이 밥을 먹고 싶어서 그린 그림이에요. 바쁜 것도 있고, 서로가 만날 수 없는 상태로 떨어져 있었어요. 우표를 이용한 <이동을 위한 회화>라고, 서로 편지를 보내면서 작업한 드로잉들이었는데. 한 친구는 군대에 있고, 한 친구는 외국에 있고, 한 친구는 직장 생활 하고 있고.. 옛날엔 맨날 밥을 같이 먹었는데 이젠 밥을 같이 먹지 못해서.. 그런 욕망에 대한 그림이었던 거 같고. 드로잉과 설치와 스토리텔링이었는데, 주류적 시스템으로부터의 이동이든 간에 그런 각자가 이동하고 싶은 욕망들이 반영된 드로잉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세대독립클럽>에서는 실제 현장의 사람들에 더 가까워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는데, 이전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한 작업에서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의 갈증이 작업에 실제로 반영되는, 영향을 주는 그런 부분으로 이어졌어요. 스토리텔링은 작업으로서의 완결성이 생기는 거 같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불특정 다수들이 개입되고, 그 안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다채널의 시공간들이 확장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 같아요. 네트워킹 되다가도 풀어지기도 하고. 그게 되게 저한테는 재밌는 부분이었어요. 그런 부분이 더 상쾌했고.

 

Q. 최근에 그런 작업들에서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에 중심을 두게 된 형식을 띤 작업을 해오시면서 ‘세대’라는 주제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사회적 코드로서의 세대를 짚어내시는 거라면.. 동의할 수 없는 텍스트들이 범람했던 시기가 2009년 쯤이었던 거 같아요. 『88만원 세대』라는 텍스트가 세대의 공기에 자리했고, 20대 루저, 잉여, 개새끼, 이런 것들이나 정치 참여에 대한 낮은 의식.. 그런 부분도 있었고. 기성세대에 입각한, 경제활동에 집중된 텍스트로만 계속 생산이 되더라구요. 이걸 다양한 텍스트를 만들어 보고 싶단 생각도 들었고, 그런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출발이었어요. 그 안에서 극단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보기도 했었고, 일부러 충돌시켜보기도 하고, 합일점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풀어지게도 해보고 그런 것들을 시각적으로 실험해보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거 같기도 해요. 그래서 일부러 세대가 그렇게 사회적 텍스트에 은둔되는 부분들, 그리고 은둔되는 비일상적 시간들 있잖아요. 새벽이나,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오프라인에 모여서 이루어지는 그런 기획들로 이동을 했던 거 같고. 그 코드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을 계획해서 실천해봤던 거 같기도 해요. 그래서 <미드나잇퍼레이드> 같이 서울의 유흥지역 한 곳에서 12시에 모여서 또 다른 유흥지역으로 이동하고, 그 또 그 유흥지역 안에서의 비활성화된 공간을 찾아서 시간을 보내는 작업을 하기도 했거든요. 거기서 나온 얘기들이 작업에 담겨지기도 하고. 그래서 다채널들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또 그걸로 얘기 하는 것에 흥미를 가졌던 시기같기도 해요.

 

Q. 청년 세대에 대한 질문들을 이어서 하면서 그 후에 <뉴 홈> 얘길 이어서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람의 생애주기, 세대론의 관점에서 청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거 같구요.

 

저는 굳이 나이대로 청년을 구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가 썼었던, 세대 앞에 붙는 수식어가 ‘성장하는’이었던 거 같은데. 나이로서 카테고리화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많았던 거 같고, 청춘이라는 낭만화된 코드들도 싫었던 거 같고, <뉴 홈>에서도 전제되듯이 도시계획이 관여하지 않은, 이들 스스로가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음에도 영향을 받아야 되는, 그 영향이 확정되지 않은.. 그런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얘기였던 거 같아요. 그런 게 청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의 공통분모였던 거 같은데. 그런 면에서 <세대독립클럽> 같은 경우에는, 흔히 말하는 그 시스템 안에서의 잉여, 혹은 그런 여러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많았고. <일시적기업> 같은 경우에서는 구직자나, 직장이 있는 사람임에도 소모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당시에 온라인에서 ‘무기력한 무기’라는 말을 쓰기도 했었는데 폭발성을 갖고 있지만, 뭔가 내적으로만 소화되는.. 그런 게 어떤 부분에 있어서 는 상상력으로 전복되었을 때 갖는 폭발성도 있더라구요. 그런 것들을 실험하면서 소모되는 세대 혹은 성장하는 세대로서 묶이는 부분을 발견했던 것이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이미 시스템에 영향을 받았지만 이미 자기 자신의 삶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 성장 과정이 자신에게 또 갈증으로 부딪치는 것으로 <뉴 홈>에서도 이어졌던 것 같아요.

 

Q. 그럼, 본격적으로 <뉴 홈>에 대한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관련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집 구하다가 들었던 생각들이 첫 번째 의문이었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장 과정에내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특정 거주경험을 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요.. 전 도곡동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이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하시던 분이셨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그 당시엔 사회경제가 어려워서 퇴직이 아니라 나이가 드셔서 정년퇴직을 하던 시기였고 부모님이 두 분 다 나이가 좀 있으시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쯤에 부모님이 퇴임을 하던 시기셨는데, 아버지가 야구 감독이셨고 어머니는 은행원 이셨죠. 옛날에. 그래서 부모님의 퇴직금을 아버지께서 주식에 올인을 하셨죠. 그런데 그걸 다 날리신 거에요. 어른들이 참.. 특히나 아버지 성격은, 잃은 것은 반드시 찾아야 하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재기를 노리셨고 집을 팔아서 돈을 끌어 모아서.. 그렇게 했지만 잘 안됐어요. 그리고 IMF가 터졌죠. 그리고 계속 이사를 하며 살았고, 계속 이사하면서 집은 굉장히 더 어려워지는 시기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계속 겪었던 거 같아요. 지금 전 부모님과 굉장히 먼 상태인데.. 그렇게 멀어졌긴 했는데, 내가 살았던 그 동네가 10년 뒤에는 재개발의 수혜 지역이었던 거에요.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익률의 최고점을 맛봤던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되게 기분이 묘했어요. 고등학교 때 그걸 마주했을 때, ‘뭐지’ 하는 생각과, 우리집은 계속 빚더미에 앉게 되는데 나는 아무런 제스쳐를 취하지 않고 이걸 계속 감당해야하는 건가.. 그러면서 부모님도 그걸 되게 미안해하셨는지 저는 고3때부터 따로 나와 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부모님과 교류를 아예 안 하기 시작했는데. <뉴 홈> 작업을 진행하다가 아파트 편을 작업하기 전에 바로 겨울에, 부모님이 계속 이자 결제만 하고 사시다가, 결국에는 사시던 집에서까지 나오셔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그 때 멘붕이 오더라구요. 부모님들도 그렇게 열심히 안 산 게 아닌데. 저도 힘들게 살고 있었지만, 살고 있던 집에 있던 돈들 다 빼고 여기[레지던시]로 오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창피한 이야기지만, 적극적으로 원조를 하기 시작했어요, 부모에게. 그리고나서 드는 생각이 되게 이상하더라구요. <뉴 홈>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집이 뭐고 가정이 뭐고, 대한민국 안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는 건 뭐고…. 되게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감정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원래는 주거문제 자체의 구조를 누출시키고 그에 대한 갈증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차 목표였다면, <뉴 홈> 세 번째 단락[신도시 아파트편]에서는 더 체념의 온도가 짙어졌던 거 같기도 해요. 이건 옛날 말로는 ‘힘든 건 고생해서 풀어야 해’, ‘고생 후에 낙이 올거야’, ‘이런 것들에서 힘을 내고 감당하고 견뎌내야 돼’ 라는 말들로 할 수 있는 사건들인데 저는 그게 억울하고, 동의하기 싫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들[<뉴 홈> 참여자들] 모두가 사라져보는, ‘집단적인 취침’으로 극단적으로 아예 이 시스템 안에서 사라져보는 것을 이미지화시켜보고 싶은 욕망이 커지더라구요. <뉴 홈>은 사실 처음에는 온도가 좀 밝다다도 점차 차갑게 식어가게 하고 싶었어요. 영상에서 ‘철새’라는 음악이 깔려 나오고, 돗자리 오브제에서 학 이미지가 나오고 사라지는 것도.. 저도 계속 이 시스템에 대한 작업을 하다가, 이 안에서 많은 질서를 체념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험장소를 물색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퍼포먼스까지 진행하는 과정들이 한 2년 정도 진행이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그 과정들을 조금 자세히 듣고 싶어요. 장소와 사람들의 섭외, 그리고 참여한 개개인들의 이야기들 같은 것들요.

 

공간 섭외는.. 가능성이 큰 지역을 집중적으로 많이 알아본 거 같아요. 여러 가능성이 있는 지역들을. 그리고 가장 불안요소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구요, 그런 면에서 흔적을 아예 안 남길 수 있도록 한 게 그런 이유에서였고.[영상 속에서 하루 밤 동안 ‘뉴 홈’을 경험하고 아침에 집을 나서는(이사) 참가자들 그 집에 자신들이 왔다 간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했다.] 참가자들에게 실제로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참가자가 공간을 제안한 곳도 있었어요. [‘원룸’ 편을 진행했던] 주안같은 경우는, 참가자 중 한 분이 인천에 사셔서. 그렇게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긴 했죠. (온라인 커뮤니티라면 어디에요?) 피터팬[‘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라는 부동산매물 직거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공지를 올리기도 하고, 여러 포털사이트와 SNS, 페이스북에 ‘뉴 홈’ 페이지. (그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 페이지를 통해서 참가신청을 하고요?) 네. 그렇게 해서, 모인 사람들이 다세대 주택에는 10명.. 원룸에서 4명, 아파트에 16명.

 

Q. 다세대, 원룸, 아파트 세 가지 공간에 대한 참여 대상을 다르게 설정하셨던 건가요? 원룸과 아파트 같은 경우는 그 집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서로 굉장히 차이가 나잖아요. 원룸은 혼자 사는 싱글들이, 아파트는 말씀하신 것처럼 신혼부부라거나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주로 구하게 될 거구요. 개인들마다, 원하는 공간과 집에 대한 욕구들이 다를 거 같아서요.

 

아니요. 초반엔 주거를 욕망하는 사람만이 유일한 참여 대상이었지 구체적인 사례를 정하진 않았구요, 원룸 같은 경우는 지역 차이 하나만.. 그 지역 사람, 그 지역을 처음 오는 사람 이런 식으로. 그리고 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모든 참가자가 그 지역을 처음 가는 거여서, 아까같이 외국인도 있었고 서울에서 동거하는 커플도 있었고, 다른 신도시에서 살아왔던 사람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동거 커플보다 신혼 부부를 섭외하고 싶었는데 동거 커플이어도 괜찮았던 거 같아요. 신혼부부나 동거 커플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거 같더라구요. 영상에선 안 나오지만 이런 질문을 했었어요. ‘함께 살면 가족인가요?’ 그룹끼리 신청한 사람 같은 경우에도, 누군가와 살아왔던 역사 같은 것들을 질문하면서. 자기 자신이 집다운 집을 느끼고 있는 케이스가 [본래의] 가족과 같이 산 케이스가 아닌 경우도 있더라구요. 그런 게 흥미롭기도 했고, 저 개인적으로는 가족과 함께 살았던 것보다 뭐 물론 혼자 살았던 적이 더 많지만, 혼자 살면서 지인들과의 연대를 형성하는 게 더 가족 같았던 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게 여러 다른 식의 경우들이 있겠지만요.

 

Q. 제가 지금 이 인터뷰가 이 ‘청년+주거’ 프로젝트에서 마지막 인터뷰거든요. 이전의 세 건의 인터뷰들에서는 혈연 가족이나 결혼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이 아닌, 넓게 말하자면 공동체 혹은 공동-주거(거주)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다른 방식의 주거를 자발적으로 택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서 <뉴 홈>에서도, 참여한 사람들의 개개인이 가진 어떤 기대랄까, 혹은 자기 서사나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참여했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어요.

 

그런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저랑은 많이 나누었지만 실제로 [작품으로] 드러나는 데에서는 조심스러웠던 거 같구요. 그런 면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 작업이 그런 여러 케이스들을 상상하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저한테도 그렇고 참가자들에게도 그렇고, 대화를 통해서.. 대한민국 주거 질서에.. 형태적인 구분은, 다세대, 원룸, 아파트가 대표적인데, 이것 말고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잖아요. 월세, 전세, 매매 같은 것이 아니고도 있었을 거고. 그리고 보통은 그런 1인 가구 체계가 아닌 방금 말씀하신 것 같은 경우들, 여러 가지 개인들의 사례들.. 그런 걸 상상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뉴 홈>의] 원룸 영상에서도 잠깐 나왔듯이, 이들이 전세금 5천씩을 내는 4명이 모여서 사실 더 많은 면적을 사용할 수 있는 집에 살 수 있다, 그런 상상들. 1차적인 상상이지만, 그런 부분들을 얘기하는 게 흥미로웠던 거 같아요. 각자들이 어떤 부분에 대해서 상상하고 ,그런 얘기들을 했는데 그런 게 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고.. 자막에서도 나왔듯이 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한 명이 나오잖아요. 그 사람은 쫓겨났어요, 원래 지인의 딸인 척 하고 거기에서 살고 있었는데 들통이 나서 결국은 그렇게 됐는데..

 

Q. 우리 세대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 같은 게 사실 주거, 그리고 일자리 이런 것들이잖아요. 참여했던 사람들의 집에 대한 고민이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일단 돈 내는 거에 급급한 주거 형태에 고민이 있는 건 100프로 다 그랬던 거 같구요. 그래서 곧 이사 가야 되고 집값이 올라가는 걱정, 그리고 아예 집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거주지가 불분명해서 계속 집을 옮겨 다니고 있는 사람도 있구요. 그리고 집에 대한, 공간에 대한 위기감은 없지만 공간감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새집과 헌집의 사회적 개념의 관심사나 재개발 등.. 온기와 씨앗을 남기는 거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는 걸 자기 스스로도 경험하고, 반영하고자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거죠.

 

모두가 잠든 새벽. 공사현장도 어둠에 잠겨 잠시 쉬고 있었다.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현장을 찾아가 살펴보았다. 그리고 주거를 욕망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new homeless.

새집에서 자는 기분은 어떨까? 그들은 뉴 홈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 자리는 옮겨진다. new homework.

일시적 주거의 행위는 ‘하우스’에 들어가 ‘홈’으로 접근하는 과정이다.

뉴 홈을 경험하고 감상하여 도달한 둥지는 성장하는 세대의 새로운 생존법으로,

상상적 제안이 되길 기대한다.

 

 

Q. 영상 속에서, 참가자들이 지켜야 할 룰이 있다면 여기서 잠을 자고 하루 생활한 흔적을 그 다음 날 ‘이사’[아침에 집을 나올 때]할 때에 없애고 나온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원룸에서의 경우에는, 과일 씨를 거기에 놔두고 오고... 그리고 종이로 학을 접는다는 건 원래 계획 없었던 거죠? (네.) 우연적이었지만, 학이라는 모티브가 뭔가를 기원하는 거잖아요. 참가자들이 학을 접는 게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하던데, 학을 접어서 시멘트를 바른다든가, 뭔가를 남겨둔다든가, 날린다던가 하는 게 우연적인 액션이었겠지만은, 참가자들 개인이 갖고 있었던, 올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는 집, 그렇지만 그들이 꼭 [하루 밤을 보낸] 이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이런 좋은 집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그 사람들의 기원이 학으로 투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네, 맞아요. 전단지로 학을 접었잖아요. 그거 즉흥적으로, 자발적으로 한 거였는데. 이 안에서 공통적인 오브제가 세 가지였는데 일시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돗자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전력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헤드 렌턴을 썼고, [‘원룸’ 편에서 참가자들이] 고기를 구워먹었던 건 일부러 냄새를 일시적으로 냄새를 베어보게 하기 위해서였거든요. 돗자리와 헤드렌턴과 야광봉같은 경우는 일시적인 자기 영역의 표시로서 시각화를 실험했던 거에요. 전 예전에 돗자리를 가지고 <학돗네>라는 작업을 했었거든요. 그것도 염원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작업들에 대한 오브제의 개념을 이어서 가져왔어요, 우연치 않게. 사실 그런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거기서 학을 접으면서...

 

Q. <뉴 홈>의 다세대 편에서 보면, 참가자가 스피커로 음악을 틀잖아요. ‘온기’라는 말이 영상 자막에서도 그렇고 사람들에게서도 그렇고 여러 번 등장하고, house와 home의 차이처럼, 이 집이 단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라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소리를 내고, 빛을 가지고 온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온기’를 만들면서 일시적으로 이 공간을 자신의 집으로 점유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영상에서 한 참가자가 그런 말을 하잖아요. 자신은 남편한테 프로포즈 받을 때 반가웠다고, 왜냐면 결혼이라는 건 집이 생긴다는 말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것도 그 부모가 집을 구해줄 만한 형편이 되는 조건일 때에만 가능한 것이겠지만요. 또 한 참가자는 ‘저는 우리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인터뷰 내용들이 지금 청년 세대들의 집에 대한 욕구나 상황, 입장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뉴 홈>은 말하자면 하루살이 집인 거잖아요. 씻고 먹고, 자는 행위를 딱 하루만 지속하고 아침에는 하루 밤 동안 점유했던 집을 떠나는, 그걸 ‘이사’라고 부르고.. 저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주거를 옮겨 다니는, 옮겨 다니며 사는 게 익숙한, 집을 전전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일시적인 집’을 받아들이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네, 그래서 또 참가한 사람도 있구요. 그런 거 같아요. 사실 그렇게 지내는 것이 <뉴 홈>의 부제 ‘M.T’인 ‘Midnight Terror’라는 건데, 어느 정도의 안락함을 그래도 느끼는 거 같아요. 사람의 신체가 머물러야 집인 거니까.. 텅빈 주택이면 집이라기 보다 그저 빈 형태적 건축물 이죠.. 새 집이고 전혀 낯선 공간임에도, 내 공간이라는 것에 있어서 몰입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걸 위해 저도 많이 노력하는 편이었어요. 그럼에도 결국, 거기를 떠나야하고, 그 떠나는 감정에서 출발한, 떠오르는 이미지도 있었을 거고. 그런 부분들이 참가자에게 대화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줬던 거 같아요.

 

Q.  페이스북에, <뉴 홈> 페이지를 훑어봤는데, 거기 중에서 이 퍼포먼스 이후에 참가자가 직접 보내온 메시지도 있던데. 그렇게 이후의 후기를 들으셨을 거 같아서, 그런 후일담도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길어서 영상에는 다 못 담았는데, 어떤 한 친구가 자신의 한 사례를 들려줬어요. 수원에 살던 친구였는데, 다음 날 피곤하게 ‘뉴 홈’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서 또 약속에 있어서 서울에 있는 친구와 만나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서울로 약속을 잡게 됐대요. 나가려고 했는데, ‘내가 왜 계속 약속을 위해서 그 곳을 왜 가야할까?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여긴데’ 뭐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냥 투정부리듯이 처음으로 그 친구에게 ‘니가 이 동네로 오면 안되겠냐’고 얘길 해봤대요. 그런데 ‘거기에 가서 뭘 하냐’고 그래서 안 와봐 놓고서, 서울에만 있어본 사람은 그렇게 얘길 하는 그런 얘길 한 친구가 있었는데.. 현재의 집은, 동네, 홈 타운이라는 할 수 있는 곳으로서보다 과열된, 집중된 부분으로 작동하는 데에 있어서, 그런 것에 갈증을 느낀다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결국엔 거기 호응하기 위해서 서울에서 집을 구하고.. 집 구하는 가격도 현저히 차이나는 곳에서 살고, 부딪치고.. [영상 속에서] 울산에서 올라온, 춤추는 친구 있었잖아요. 그 친구 인터뷰를 들어보면은 자기는 서울에 살고 싶다고 얘길 해요. 여기, 아무것도 없는 데서 살기 싫다고. 그런데 그런 생명력들이 그대로 유지되는 또 다른 공간을 없는 걸까.. 라는 걸 상상하게 되더라구요. 그런 얘길 듣다 보면은. 그래서 가족, 혹은 공동체에 대한 것이 더 이어지는 거 같기도 하고.

 

Q. 저는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전주와 제주도에 방문해 인터뷰를 했는데 청년에 대한 질문이나 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역과 서울의 차이를 많이 느끼게 되더라구요. <뉴 홈>같은 경우 서울의 관악구, 수도권 도시 인천, 그리고 막 만들어진 청라라는 신도시로 거점이 중심에서 주변으로 점점 이동하는 구조로 구상했다고 하셨지요. 이 프로젝트 안에서도 도시라는 걸 중요한 키워드로 잡고 계신 거 같은데요, 도시라는 공간에 대해 갖고 계실 이야기들이 궁금해요. 그리고 도시에서 청년 세대들이 자기만의 방, 혹은 자기만의 집을 갖는다는 게 어떤 걸까, 가능한 걸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수도권 중심적인 삶에 대해 얘기해주셨잖아요, 그런 면에서 사람이 도시 시스템에서의 사용자, 소비자, 생산자면서 어떻게 보면 중요한 구성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성품이 아니게 대우받긴 하지만. 그 구성품이 도시의 유지를 위한 요소로만 반영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던 거 같고. 아직까지도, 넓게는 국가의 구성품으로서, 너무나 단단한 부분으로 옥죄고 있어서 그런지, 아까같이 완벽하게 도시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부분인 거 같아요. 사례가 많아져야 하는 거 같아요. <뉴 홈>도 그런 면에서, 사례 탐구의 목적인 거 같기도 하면서 저 스스로도 사례를 계속 고민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도시의 구성원이지만 현재는, 일방향적 구성원이 아닌 것으로서의 상상들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다음에 하려고 하는 작업도 그런 것이거든요. 도시보다 국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지만.(그 이후 프로젝트 얘기 좀 더 해주실 수 있나요?) <뉴 홈>에서도 구체적으로 텍스트로 다룬 건 아니지만, ‘집단 취침’이나 이들이 날라가 버릴 거 같은 연약한 이미지, 혹은 어떤 위기의 이미지나 체념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면, 그렇게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후의 시스템을 조금은 유쾌하게 비틀고, 국가 시스템을 이용하는.. 그런 작업을 구상 중이에요. 그래서 외국에 가려고 하는 이유도 그걸 좀 더 알아보고 실행해보려, 실험해보려고 하는 것 때문에 다음 달에 갈 계획을 갖고 있죠. (바운더리가 점진적으로 넓어지네요?) 그게 어떤 입장에서 보면 넓어지는 건데, 오히려 저는 더 생활에 가깝게 가는 거 같아요. 큰 이동을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가깝게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일시적기업>보다 <뉴 홈>에서 참가자들과 더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 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일시적기업>과 <세대독립클럽>이랑 이야기하자면, <세대독립클럽>같은 경우는 한꺼번에 이동을 하고, 규모가 크고, 종시간적으로 이동했다면 <일시적기업>은 하루하루, 저녁시간 때, 일과시간이 끝난 시간에 이루어지기도 했고 <뉴 홈>은 하루를 같이 지내보는 작업이었는데 확실히 더 깊이 얘기했을 때 느끼고서 남은 것들이 저에게 작가로서 더 흥미로웠던 거 같아요.

 

Q.  2년 정도의 일련의 작업들로 이루어진 <뉴 홈>을 시작하기 전 그리고 후에 달라진, 집에 대한 생각 같은 게 있었나요?

 

아, 서울에서 살면 안되겠다.. (계속 서울에서만 사셨죠?) 네, 서울에서만 살았어요. 내가 진짜.. 왜 서울에서만 살았지, 그 돈 내고 왜 살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진짜 뼈저리게 했어요. 저 지금 여기 인천, 이 동네만 해도 너무 좋아요. 전 서울에서 사는 동안 계속 서울을 돌아다녔거든요. 많이 경험해보려고 했었고 그런 관심사도 컸고. 과잉으로 몰려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회사도, 목적들이.. 회사에 가기 위해서, 유흥지에 가까이 있기 위해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이 이유일 거 같은데, 거기마다의 지역성들을 살려야 되는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사실 그 불균형 때문에 죽어가는 것들도 많잖아요.

 

Q. 작업 하시면서, 기획 의도에서도 쓰셨던 것처럼.. 지금 도시와, 지금 도시에서 난립하는 형태의 집들을 만들고 있는 자본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욕망들이 지금의 방식의 도시와 주거지들을 구획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어쨌든 <뉴 홈>을 통해서 그 도시 주거 개발의 중심에 들어가서 하루간의 반란이랄까 하는 것을 시도하셨던 거 같은데, 그 속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떻게 보면 <뉴 홈>은 새 집이라는 것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지만 새로운 집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싶었나봐요. ‘우리’라고 얘기할 수 있는, 청년이라고 묶이고 거기에 동의하고 공감했던 사람들과... 그런 생각이 들어요. <뉴 홈>이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지어진 제목인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올드 홈’과 ‘뉴 홈’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단순하게 얘기하면 거기서 출발했겠죠. 교환가치로서의 집, 기능적으로만 사용됐던 집, 회사를 다니기 위한 집, 잠만 자는 집으로만 변종만을 키워내는, 그리고 어떤 특정 부분만의 문제만 확산시키는 집의 형태들로부터 출발했던 거 같아요. 뉴스나 사례를 수집하다 보니까 끝이 없더라구요. 어제 택시에서 들은 뉴스에서 그러더라구요. 입주가 덜 된 아파트에 전기를 끊는 일이 생겨났고 한전에서 그걸, 전기료를 충당 받지 못해서 일부러 끊는대요. 100가구 아파트에 20가구가 안 들어있어요. 그럼 전체의 전기 금액의 예상액들이 안 들어오는 거에요, 한전에. 그래서 끊어버린.. 애초의 계획 자체가 다 불균형이라는 거죠.

 

Q. 영상을 보면서 ‘어떤 사람이 집을 ‘우리 집’으로 느끼는 데에 중요한 건 어떤 걸까’ 하는 질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뉴 홈”이라는 게 어떤 걸까, 라는 질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영상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이 집에 들여놓길 원하는 각종 집기, 전자기기같은 물체들 채우고 배치하면서 그 새 집(house)를 ‘나의 집(home)’으로 만들어가며 안락함을 느끼는 것 같고, 동거 커플의 경우에는 예전에 집은 잠만 자러 오는, 육체적 재생산만을 위한 집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집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그런 그에게는 함께 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집(home)’에 있어서의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요.

 

[집에서 중요한 요소는] 나와 소중하게 동반자로 살아가는, 어떤 사람에겐 반려동물일 수 있고, 어쩜 물체가 아닌 생물일 수 있는데.. 욕조가 있고 티비가 있고, 편안한 침대가 있고.. 그럼 나의 편안한 집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긴 한데. 그런 면의 사례들을 노출시키는 것들.. 내가 언제부터 혼자 살게 됐지, 언제부터 혼자 사는 것 밖에 생각을 못 하게 됐지, 하는 충돌도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업 하면서 그런 질문이 들었던 거 같긴 해요. 사람은 언제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을까, 왜 혼자 살기 시작했을까. 그게 여러 가지 상업화 도시화.. 그런 맥락에서 개인이 이동하는 구조들, 그 전에 핵가족화 이런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익숙해진 사람들의 삶의 질서들이 있는 거 같아요. 저도 동거 커플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경험도 있거든요. 함께 살아갔을 때의 정말 온기가 있었고, 사람으로서 위로받는 부분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것만이 집이라고 얘기할 순 없지만.. 형태로서의 ‘하우스’가 아닌, ‘홈’이라고 느낄 수 있는 집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죠. 티비가 있고 넓은 집에 사는 걸 큰 욕망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사람들이 물질적 욕망을 학습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좋은 오피스텔에서 침대 있고... 멀티 시스템에 사운드를 가진 티비가 있고. 그런 게 있으면 자신의 삶의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고 편하겠지만, 그 안에서의 결핍이 있을 거고.

 

Q. 그런 의미에서 그럼 청년 세대에게 집이라는 게 어떤 방식이 될까, 소유하는 것? 점유하는 것, 점거하는 것? 혹은 전전하는 것...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지금은 기성세대에게는 무게있는 금전교환가치로서의 집에 대한 가치가 크다면, 젊은 세대에겐 텍스트에 나온 것처럼 ‘뉴 홈리스’로서의 부분이 가장 큰 거 같아요. 누가 우리 동세대 안에서 집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기성세대에게 학습한 부분으로서, 집을 소유해야 나중에 그걸로 어떻게 한다, 이런 걸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의 사람이 더 많기도 할뿐더러.. 이런 경험들을 지나면서 집들, 주거문화에 대한 정책과 삶의 사례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사례가 생길 수 있단 생각도 들어요. 외국사례에 대한 반영도 있을 거고, 다른 케이스들도 확장될 수 있고 사라질 수 있고, 오히려 주거 형태 중 아파트만 사라질 수도 있고, 원룸만 사라질 수도 있는.. 하나의 과정들이 계속 생기겠죠. 그러면서 분명 지금의 질서와는 다른 부분이 생길거란 생각은 들어요.

 

Q. 전 최근에 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결국 어떤 모습의 삶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랑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량 씨가 살고 싶은 집이나 주거의 형태는 어떤 것인가요? 물리적인 형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삶의 방식이기도 할 테고요.

 

일단 보증금 얼마, 이런 것에서 자유롭고 싶고.. 그런 면에서 제가 얼마 뒤에 외국에 간다고 한 것도, 그런 상상을 더 펼쳐보기 위해서 긴 시간 가보려고 하는 건데. 어떤 집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많이 옮겨 다니며 살면서.. 내가 뭔가 실제의 혈육 가족이 아닌 것으로서 가족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뭘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주거들을 옮겨 다닐 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Q. 집이나 주거, 같은 거 생각할 때 정착이라는 것도 함께 떠오르시나요?

 

옛날엔 그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어요. 아까 말한 것 같은 사건들도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더 반대 속성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떠나보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이후에 실험해보려는 게 관계 맺기를 통해 국적이 바뀌고, 문서화된 제도 접근으로 인해, 뭔가 할 수 있는 계층이 생기는 것.. 그런 거 실험해보려고 하는 게 크거든요.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가는 형태도 선택하게 되는 거 같기도 해서. 정해놓진 않았지만, 그런 것에 반영된 주거 선택일 거 같아요.

 

 

 

‘중얼중얼 거리겠지, 할 말 딱히 있는 건 아니겠지. 그들 모두 어리겠지. 태어났을 뿐이지.

추위는 견뎌내겠지, 대신 숨을 쉬긴 힘들겠지. 둥지에서 살겠지? 훨훨 날아가면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지.’

 

<뉴 홈> 신도시 편에서, 새벽이 밝아올 즈음에 배경으로 흐르던 노래 ‘철새’의 가사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는 청년 세대는 그야말로 ‘철새’같다. 계절 단위로, 흔하게는 2년 단위로, 몇 달 단위로 계속해서 거처를 옮겨 다니며 서식하는 종족들이다. 그렇게 그들이 거쳐 간 곳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도 될 만큼 일시적인 둥지가 되기도 한다. ‘뉴 홈’에 하루 동안 거주했던 일시적 입주자들은 그들의 짧은 잠에서 어떤 꿈을 꾸었을까? 다시 어디로 날아가는, 철새의 꿈이었을까? 꿈 속의 둥지는 이 빽빽한 콘크리트숲의 둥지와 얼마만큼 멀리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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