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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 / video installation / 2023, 2024 (12:19)

나는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파트가 빼곡하던 동네였다. 엄마는 은행에서 오래 일을 하셨다. 엄마는 은퇴 후에 작은 가게를 열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모든 돈을 주식에 넣어 그 돈은 사라졌다. 이사를 가야 해서 살던 집을 팔았는데 이사 후 집값은 수직상승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없어졌고 그곳엔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버지는 모든 돈을 끌어 모아서 다시 도약을 바랬다. 1997년 IMF 이후 너무나 많은 이사를 다니게 되었다. 이후로 나의 가족은 사진을 찍지 않았고 서로 대화도 하지 않았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상황을 그저 받아들여야 했다. 해소할 곳이 없어 인터넷으로 도망쳐 현실과 다른 존재로 살았다. 나는 꿈이 없었고 그림은 무력함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미술학원을 무료로 다녔다. 학비가 저렴한 대학에 진학했다. 나는 가족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상은 매일 시끄러웠다. 그리고 나는 밤마다 잠들지 못했다. 2012년, 나는 이 나라를 떠났다.

2020년 봄, 이사할 집을 계약했다. 늘 하던 이사가 새롭게 다가오는 날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나의 엄마가 건강함을 잃었다는 소식이 나에게는 늦게 전해졌다. 나 역시 건강을 잃었을 때, 부모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으니 뭐… 나의 부모는 내가 중학생 때,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을 테니 각자의 삶을 살자.”고 말했다. 각자가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그런… 엄마가 파킨슨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모든 몸의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시간이 떠올랐고, 나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건강한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까지 나는 나를 위해서만 살았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에게 조금 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그뿐이다.

2021년 여름, 목소리를 잃어가는 나의 엄마와 함께 책을 읽는다. 뇌가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 가를 설명하는 책이다. 책을 보는 엄마는 둔감한 눈으로 느릿한 목소리를 더듬거린다. 엄마에게 자신의 몸을 더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수술은 잘 끝났다. 머리가 뻐근하고 안면 마비 증상이 생기며 알게 된 종양이었다. 예민하고 무리하며 살았던 시기였다. 오랫동안 방치했다가 커져서 이제야 수술을 했다. 신경이 아직 자리 잡지 않아서 머리와 귀가 내 것 같지 않았다. 원래 내 것은 맞나? 의사 선생님에게서 감각은 곧 돌아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다.

2022년 봄, 몸에 힘이 없다고 느끼며, 잘 걷지 못하는 사람과 살고 있다. 보행기를 써서 움직이는 시도를 하다가 힘이 풀려 쓰러진다. 그리고 다친다. 그 반복적인 행위를 보며 그보다 몸이 건강하다는 이유로 답답해한다. 마음이 식는다는 것은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식어가는 몸과 마음을 보게 된다. 엄마는 온몸을 떤다. 병의 증상 중 하나이다.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몸이 떨리지만,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엄마에게 내가 쓰던 색연필을 손에 쥐어주며 그림을 함께 그리는 시간 가졌다. 선이 떨리는데, 그게 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미약한 힘으로 무언가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버틸 수 없는 상태 혹은 버티고 있는 상태 사이에서.

2022년 5월 1일 아침, 엄마는 숨을 더 이상 쉬지 않았다. 한참을 울고, 오후에 영정사진이 빈소에 도착했다. 사진의 얼굴을 본다. 말을 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왜 내가 위로를 받는 거지? 역시 엄마는 천사인가?’ 친구들이 찾아와 천사와 인사를 나눴다. 한 번도 내 친구들을 소개하지 못했었는데, 수많은 인사와 기도가 오가고 나는 그것을 빠짐없이 지켜본다. 처음이었다. ‘뭐지, 이 행사는 엄마의 작품인가?’ 날씨는 왜 이렇게 좋고 천사의 표정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사람들과 그런 마음을 나누고 위로받았다. 그리고 엄마가 평안함에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23년 봄, 어릴 때는 천사를 따라 예배당을 다녔지만 재미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을 피해 비어있는 예배당을 들어가는 일이 더 많았는데, 고요하고 아름다운 빛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새어져 나오는 빛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빛으로만 세상을 인식하며 집중할 때 벌어지는 일이었다. 90년대엔 나라도 집도 망했지만, 천사는 왜 계속해서 헌금을 내가며 꼬박꼬박 교회를 갔었을까?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을 살게 했던 것일까? 교회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편안해 보였다. 나는 그것이 괜히 유쾌하지 않았고, 그 후로 천사와 함께하는 일도 없었다. 성인이 되고는 가끔 비어있는 성당에 가기도 했고, 사찰들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베를린에서 지낼 때는 우연히 불교 관련 책을 공부할 기회도 있었다. 나의 그 수많은 벗어남이 출가였음을 느꼈던 시간도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든 새어 나오는 빛을 바라보며 그 안으로 들어간다. 신은 어디에 있나? 멀리 그리고 가까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믿음. 믿음은 존재의 거리를 무색하게 한다. 무엇을 마주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나? 그리고 모든 존재를 사랑할 수 있나? 미소를 머금고,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을 느끼고 있다. 나는 지금 천사와 동행하고 있다.

2024년 봄이다. 죽음은 단순하게 상태를 뜻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다른 존재의 죽음을 마주하는 경험과 그에 따른 기억과 이미지는 무수히 많기에 무거운 단어와 의미를 지닌다. 사건, 장례, 애도, 순례, 때로는 그렇게 각자가 경유한 모든 경로가 죽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경로를 차근차근 다시 따라가다 보면 죽음조차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일지 모른다. 죽음으로 가는 길과 생으로 가는 길이 같기 때문이다. 연결된 것들이 생명으로 돋아나는 것과 반대로 죽음은 연결된 것들의 끊어짐에 가깝다. 하지만 숨이 끊어진다 해도 자신의 몸과 마음 안에 모든 것이 다 끊어진 것이 아님을 떠올릴 수 있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생과 사로 붙어 있는 것들의 본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그 본래의 모습에 안심하고, 숨으로 돌아오고, 생의 살결로 돌아와 빛을 따스하게 느낀다. 죽음과 생의 전환을 경험한 사람들을 본다. 상실과 고통 끝에 홀가분한 자유를 떠올리는 이를 본다. 여전히 애도 중인 이들을 본다. 묻어둔 기억은 소멸한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어딘가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생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빚이 아닌 빛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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