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FTER) (ALL)
박수지
*《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Album 수록
FOR AFTER (ALL)
(결국에는)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충분히 겪었던, 아직 겪지 못한 그 모든 여정을 염두에 두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말하고 싶다. 아직 겪지 못한 것이 있는데도 (결국에는) 중요한 것을 서둘러 말할 수 있다면, 그 오만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이 변치 않는 중요함에 대한 믿음이 통속적인 동시에 어리석다고 여기면서도 그런대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필요는 지나치게 유용하다는 단점이 있다. 어떤 의지를 갖게 한다는 점, 무언가를 끝내 원하도록 추동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나는 의미심장한 뉘앙스로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쓸 것을 모르는 채로 스스로 먼저 갖게 되는 기대감이 있어야만 한다. (결국에는) 중요한 것 앞에 최상급의 수식어가 붙으려면 시간이 필수적이다. 가장, 최고로, 제일과 같은 부사가 붙으려면 그에 합당한 시간의 부피가 있거나 거대한 부피와 맞먹을 시간의 밀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어쩌면 가장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발설하는 중요함만이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최상급은 언제든 붙여도 되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렇든 저렇든 간에' 혹은 '어쨌건 간에' 라고 운을 떼며, '이렇든 저렇든' 혹은 '어쨌건'의 시간 안에 서술할 말을 만들어내느라고들 바쁘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고, 요약하기에는 곤란하다. (결국에는) 예상과 가늠을 빗나간다.
FOR (AFTER) ALL
잘 풀리지 않는 질문을 몇 해에 걸쳐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한때는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인가?'였고, 한때는 '용서란 얼마나 오만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한 사람에게 예술이 감지될 수 있는가?'도 여럿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다. (이때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신에게 덜 중요한 것을 다 지우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도 단골 질문이었다. 당신들은 우선순위라는 자기 확신 혹은 믿음에 위배되는 것들에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 남은 진실이 절망과 흡사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닥쳐온 절망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눈앞의 절망은 사람들이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이것은 전혀 강요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남들보다 더 늦지는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악을 선택해야 조금이라도 더 연명할 수 있다는 안 보이는 믿음이 공고하다. 마치 연명이야말로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듯한 모습이다. 버젓이 위장을 가진 나는 여기에 어떤 반박을 할 수 있나? 나의 한때 좌우명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참지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였다. 아르튀르 랭보가 했던 말이라는 것 정도만 알뿐 그 정확한 출처 같은 것은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좌우명이라기엔 희망차거나 야심차지 않지만, 지루함이라는 삶의 곤란을 대비해서는 충분히 좌우명 삼을 법한 말이다. 반면 죽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것들을 들춰보는 일은 그다지 지겹지 않았다. 더구나 죽은 사람들에게는 위장이 없기 때문에 선뜻 다가가는 일이 다소간 거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이 남겨놓은 문장은 때때로 문학이라고 불렸고, 어떤 때에는 철학이라고도 불렸다. 나는 특히 지루함에 대해 고백할 줄 아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지루함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낙관적이었고, 익살꾼이었다. 그들은 모든 기쁨, 쾌락, 절망, 고뇌의 반대편에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지루함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기쁨, 쾌락, 절망, 고뇌 같은 것에 응당 견해를 아끼지 않았다.
FOR AFTER ALL
모든 지금이란 '그 후'와 같은 말이다. 내가 어딘가를 떠났기 때문에 여기에 있고, 내가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에 다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햇수로 삼 년 전부터 매년 비슷한 시기에 나를 불러다 앉혀 놓고는 (물론 내 발로 가 앉은 것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그 선명함은 매번 떠나려는 결심을 뚜렷하게 해주곤 했다. 나는 또 그때마다 대화의 맥락과는 관련 없이 갑작스럽게 울어버렸다. 이렇게 몇 문장으로만 보면 마치 장르소설의 드라마퀸 같겠지만 눈물이라는 것이 그렇게 통념으로만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당황해야 할 부분은 나의 갑작스런 눈물이 아니라 내가 우는 것에 친구가 미동 하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휴지는 건네주었다.) 친구는 나에게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듯한 문장들을 더러 말했다. 나는 매번 명확히 지시하지 않는 그의 말들을 나의 경험치와 확신을 활용해 독해했다. 분명한 것은 그 문장이란 그가 시간 걸려 직접 알게 된 것들을 내 앞에서 꺼내어 놓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친구는 일 년에 두어 번 많게는 서너 번 보는 정도가 다였지만 볼 때마다 양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양손을 꼭 붙잡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와는 대화의 중간 혹은 헤어질 때 잘 지내라는 약속처럼 오른 손을 맞붙잡고 두어 번 흔드는 것이 다였다. 그렇지만 그가 말을 할 때의 표정이나 목소리, 속도 같은 것들은 분명 양손을 꼭 잡은 신신당부 같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는 뜬금없이 내가 소진되는 것을 걱정한다거나, 내가 오르막 계단처럼 보이는 쳇바퀴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내가 살아온 삶은 두껍지 않았다. 이것이 소진인가 활력인가, 오르막인가 쳇바퀴인가 단박에 알만큼 두껍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두께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나는 두께가 주는 울림 같은 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는 아마도 나의 삶이 두꺼워지는 시간을 같이 맞이하고 싶은 것 같았다. 두꺼운 만큼 잘 보고, 잘 보는 만큼 어떤 결심에 망설이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표면을 선명하게 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안 보이는 것을 선명하게 보는 것이 중요했다. (선명함에 대해서라면, 열다섯 살 무렵에 소나기가 한차례 세차게 지나간 어느 오후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아파트 15층 나의 방에서 침대에 올라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선명했다. 나는 그 선명함이 싫어서 안경을 벗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최근 일 년간은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친구에게 내심 자랑스럽게 이 소식을 전했다. 생각하는 일에는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고양감과 열패감이 동시에 들기 마련이다. 나는 고양감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친구는 내게 '서울 사람'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고양감마저 '서울 시간'에서 발휘해본 것임이 판명되었다. 다른 장소가 필요했다. 임계점에 다다랐다. 이곳이 불쾌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곳이 나의 과속을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에 자랑스럽게 그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다. 그때는 그랬던 시간이었는데 잘 떠났다. '그 후'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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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1일
박수지로부터
나는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저런 방식으로 소개되곤 한다.
불쾌했던 기억은 없다. 다만 그때마다 과연 그러한가? 나는 당당한가? 자문하는 편에 가깝다.
이 답장에서는 ‘차지량의 잦고도 드문 발신에 수신인이 되곤 하는 사람’ 정도가 적절해 보인다.
더불어 ‘발신자가 되는 용기 같은 것을 내어보고 싶은 사람’도 될 수 있겠다.
적어도 답장을 쓰는 와중에는 아무것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러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