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 못 살겠다!” 답답할 때 나도 모르게 내뱉던 말. 하지만 진짜 이 나라를 뜰 생각은 안 해봤다. 맘에 안 드는 것들 조금만 참고 살면 편하니까. 그런데 “떠나겠다”는 말을 현실로 옮긴 사람이 있다. 그는 얼마 전 케이블 방송 <아트스타코리아>에서 이름을 알렸던 현대미술가 차지량. 며칠 전엔 부산항에서 배를 띄웠고, 한국을 탈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국민’ 대신 ‘난민’을 선택한 차지량을 경기도 작업실에서 만났다."
Q.작가는 지금껏 상식에 반기를 드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여의도 빌딩을 습격한 ‘일시적 기업’(2011)이나 주거 문화를 고민한 ‘뉴홈’(2012) 등. 이번에는 ‘한국난민대표’(2014)다. 어떤 공연인가.
A.배경은 2024년의 대한민국. 정치·사회·교육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 없는 가상세계를 설정했다. 이곳 사람들은 견디고 체념하는 일에 익숙하다. 만약 국가를 손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시스템 안의 구성원을 사라지게 하는 건 어떨까? 그래서 난민신청자를 국가에서 탈출시키는 ‘한국난민’관련 3부작을 올해 초부터 시작했다.
Q.작가의 공연에선 관객이 주인공이다. 관객 반응이 곧 공연의 일부라는 점이 인상깊었다.
A.그렇다. 공연 참여자가 난민으로 등록하는 모습부터, 한국을 떠나 목표한 나라에 도착하는 여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첫 번째 공연은 ‘뉴미디어를 장착한 체념이 광장을 가로지른다’. “한국에서 못 살겠다”는 난민 신청자들이 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리무진을 타고 난민 신청하러 가는 과정을 담았다. 신청자들은 흥에 겨워 노래하거나 숙연해졌고, 울기도 했다.
Q.10월 3일엔 부산항에서 난민 신청자를 데리고 배를 띄웠다. 진짜 한국을 떠날 생각이었나?
A.부산항에서의 선상 공연은 프로젝트의 두 번째 공연, ‘대표의 균형이 개인을 살린다’였다. 부산항에서 출발해 특정한 나라에 도착하는 게 목표였다. 먼저 배에 탄 관객 100여 명이 지금 이곳을 ‘체념이 극단에 이른 2024년’으로 몰입하게 했다. 난민 신청 이유를 서로 밝히거나, 난민 대표를 뽑기도 했다.
Q.난민 신청자들은 어떤 나라에 도착하게 되는가?
A.2024년 대한민국에서 출발해서, 2014년 대한민국에 도착한다. 단순하고 허무한 결과인데. 배에 탄 관객들은 예상하지 못한 여정이다. 배는 줄곧 어딘가로 향하듯 진동했다. 마치 특정한 나라에 도착할 것처럼 퍼포먼스를 전개했다. 사실 배는 부산항을 떠나지 않고 항구 근처를 맴돌았다.
Q.난민을 신청한 관객이 무엇을 느끼기를 바랐나?
A.나는 ‘예술이 가장 최고’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단지 내가 만들어내는 예술적 상황이 유효하길 바란다. 이를테면 음악은 듣는 이를 위로한다. 영화는 해소되지 않은 과거 문제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실제로 예술이 삶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프로젝트가 얼마만큼 우리 삶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내겐 큰 고민이자 갈증이다.
Q.스스로 난민이 되려고 배에 탔다. 물론 그들의 이유를 하나로 묶을 순 없지만, 그들은 각각 어떤 사연을 들고 왔는지 궁금하다.
A.배에 오른 사람 모두에게 구체적인 텍스트를 받진 않았다. 대신 한 사람씩 나와서 발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청 이유는 ‘한국난민판매’ 웹사이트(www.korean-sales.org)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키가 작아서 못 살겠다”고 토로하고, 또 어떤 이는 취업난을 호소했다.
Q.작가는 충분히 성공할 만한 요소를 갖췄다. 언론의 주목도 받았고. 성공해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나?
A.특권층이 되어서 사회를 바꾸겠다고? 자기 합리화로 보인다. 특권에 기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이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처럼 계속 작업하고 싶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은 굉장히 소소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