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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critic-al.org/?p=4098

 

이 후기는 2014년 3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진행된 ‘한국 난민’ 시리즈에 대한 나의 조각난 생각들을 그러모아 본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동안 진행된 세 가지 ‘한국 난민’ 시리즈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한국 난민’ 시리즈를 모두 경험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세 가지 프로젝트 중에 어느 하나라도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 후기를 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난민’ 시리즈 후기는 각각의 프로젝트가 완결된 직후에 개별적으로 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개별적인 후기를 쓰기 위한 시간을 매번 확보할 수 없었을 뿐더러 사전에 계획된 프로젝트가 모두 마무리되지 않은 시리즈의 후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내키지도 않았다. 최근, ‘한국 난민’ 시리즈의 예정된 프로젝트가 모두 마무리되었고 때마침 나도 쌓였던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후기를 쓸 시간을 확보했다. 그러니 내가 ‘한국 난민’ 시리즈를 경험하며 떠올렸던 조각난 생각들이 하나라도 덜 휘발되기 전에 단어와 문장으로 연결하고 기록해 둬야겠다.

 

<뉴미디어를 장착한 체념이 광장을 가로지른다: 한국 난민 판매>(2014)로 시작된 ‘한국 난민’ 시리즈는 제목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난민이라는 개념을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사실 나는 ‘한국 난민’ 시리즈를 처음 접하기 전까지 한국과 난민의 상관관계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난민이라는 개념은 한국과 멀리 떨어진 민족에 국한된 일이거나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2003~2005) 같은 애니메이션 속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개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국 난민’ 시리즈를 처음 접했을 때 난민이라는 개념을 생소해 하면서도 동시에 호기심 어린 태도로 대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난민’ 시리즈에 대한 나의 막연한 감상이 우후죽순 튀어나올 것 같은데 그 전에 우선 이 후기를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에 대한 가닥부터 정해보자. 무엇보다 이 후기는 ‘한국 난민’ 시리즈에서 내가 길어 올릴만한 유의미한 가치가 무엇이고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후기가 단순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한국 난민’ 시리즈를 경험했던 많은 분들과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이정표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 난민’ 시리즈는 누구의 것인가?

1년 동안 일정한 시차를 두고 세 가지의 프로젝트로 진행된 ‘한국 난민’ 시리즈의 연출가는 누구인가?―그런데 여기서 연출가와 작가 중에 뭐가 더 알맞은 명명일까? 세 가지 프로젝트가 모두 공연과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연출가라고 명명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한국 난민’ 시리즈의 연출가는 차지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퍼포먼스 예술가이자 실험영화 감독, 콘서트 미술감독이고 심지어 방송인이기도 하다. 차지량의 활동분야는 다양하고 앞으로 어떠한 영역이 새롭게 추가될지 모를 일이니 그냥 전방위 예술가라고 퉁치자. 그런데 나는 ‘한국 난민’시리즈의 가치를 차지량 일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에 대해서 매번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한국 난민’ 시리즈는 차지량이 주도한 것이지만 이 시리즈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수행한 많은 이들이 관계가 총합된 것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관계의 총합에는 문화예술기금이나 페스티벌 봄 같은 조직도 포함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난민’ 시리즈와 관계를 맺은 많은 사람과 조직의 협력이 없었다면 ‘한국 난민’ 시리즈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적인 소통의 과정에서 ‘한국 난민’ 시리즈를 차지량 일인에게 귀속시키기보다 그와 우리들이 공유하는 경험의 총체라고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영상기록물이나 인쇄물에 삽입되는 크래딧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가능한 문제다. 차지량도 자신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대부분의 영상기록물에 크래딧을 사용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소통 과정 속에서 크래딧 같은 요소는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차지량의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분야에서도 관습화된 방식으로 나타난다. 어쨌든, 우리가 타인과의 대화 과정에서 ‘그와 우리들이 공유하는 경험의 총체’라고 말하거나 ‘누구, 누구, 누구가 함께한 프로젝트다’라고 구구절절하게 말하기에는 여간 번거롭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차지량의 ‘한국 난민’ 시리즈는 일상적인 소통과정에서 차지량의 프로젝트라고 습관적으로 호명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내가 이러한 고민을 예전부터 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일상적인 대화에서 차지량의 프로젝트라는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이에 관련된 나의 사연을 예로 들어보겠다. 최근에 나는 차지량에 대한 추천서를 쓴 적이 있다. 나는 추천서를 쓰던 당시에도 앞서 밝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추천서를 쓰면서 ‘차지량의 프로젝트’라고 써야 할지 아니면 ‘차지량과 친구들의 프로젝트’라는 다소 욱여넣은 듯한 표현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나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추천서 초고에 ‘차지량과 친구들의 프로젝트’라고 썼다. 그러나 나는 제한된 추천서 분량에 쓸데없는 지점에서 나의 주관을 너무 욱여넣었다는 생각에 ‘차지량과 친구들의 프로젝트’라는 표현을 ‘차지량의 프로젝트’라고 수정했다 그런데 나의 이러한 고민은 과연 쓸데없는 지점이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고민은 쓸데없는 고민이 아니다. 나는 이 고민이 일반적으로 참여형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형식을 주로 다뤄온 차지량뿐만 아니라 그러한 프로젝트와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차지량이 다뤄온 프로젝트의 발안자가 차지량 자신이었고 그가 주도적으로 자신이 발안한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그가 각 프로젝트에 대한 많은 지분을 가졌다는 것을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차지량의 프로젝트들은 차지량 1인이 완성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혹은 조직과의 관계맺음을 통해서 완성되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차지량의 각종 프로젝트가 자발적인 참여와 적정한 임금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차지량 1인에게 환원될 수 없는 빈공간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빈공간은 차지량 1인이 아닌 그와 함께한 사람들과 조직의 관계가 담겨야 할 곳이다.

 

내가 후기의 첫 꼭지를 ‘난민 협상’ 시리즈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한국 난민’ 협상은 누구의 것인가?‘를 다루는 것은 본 후기에서라도 나의 고민과 부합될 수 있는 표현을 모색해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예전에 차지량의 추천서에서 사용하려다가 포기했던 표현을 조금 손봐서 ‘차지량과 우리들의 프로젝트’라는 맥락의 표현을 필요한 곳에만 사용해보려고 한다. 원래는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서 친구를 우리로 바꾸었다. 이 표현도 여전히 욱여넣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번 후기에서라도 한 번 이렇게 해보고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더 고민해 보고 싶다.

 

차지량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한국 난민’시리즈를 헤매지 않고 복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동안 차지량이 무슨 생각을 하며 활동했는가에 대해서 거칠게라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차지량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나도 차지량이 무슨 생각을 하며 활동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나도 그가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며 활동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모호한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차지량이 무슨 생각을 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앞서 나는 과거에 차지량에 대한 추천서를 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추천서에는 차지량의 진술을 토대로 추측한 그의 지향점을 내 나름대로 간단하게 정리한 내용이 담겨있다. 참고로 여기서 내가 말하는 차지량의 진술은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과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이다. 그래서 나는 차지량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대한 나의 의견을 과거에 내가 썼던 추천서를 되새김질해보는 것으로 대신해보고자 한다. 추천서의 서두는 최창집과 이택광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시작된다.

 

최창집은 한국의 1987년 체제의 지분을 나눠 먹은 구체제 엘리트들이 1987년의 대규모의 노동자 투쟁운동으로 가시화된 노동자계급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 이택광은 1987년 체제 이후의 진보운동이 노동계급보다 도시중간계급을 통한 자유주의를 내세웠다고 말했으며, 한국의 진보운동 세대로 대변되는 386세대는 1980~90년대를 지나면서 독재, 사회주의, 민족주의, 공동체주의가 쇠퇴하자 경제적 자유만을 유일한 진리로 삼는 자유주의자로 서서히 전향했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자유가 유일한 진리가 된 현재의 한국은 1987년 체제의 시작부터 배제된 노동자계급의 삶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의 원동력인 도시중간계급의 삶까지도 황폐하게 하고 있다. 한 마디로 1987년 체제는 그동안 오작동의 궤적을 오랜 시간 그려온 것이다. 1987년 체제의 오작동은 우리에게 적자생존과 각종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를 제시했다. 그래서 1987년 체제의 오작동은 한국사회의 정치와 제도의 붕괴와도 연결해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오작동의 궤적 속에서 현재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좀비처럼 영혼이 휘발된 수동적인 소비자로 집단변이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 제도가 붕괴한 사회 속에서 불안과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막상 이러한 불안과 고통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이거나 외면하고 있다. 사회는 고유한 개인들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을 때 더욱 온전하게 성립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고유한 삶이 사회 속에서 재현되지 않을 때, 사회도 온전히 재현되지 못한다. 현재 한국은 정치, 제도의 붕괴로 사회와 개인이 온전히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사회와 개인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끊임없이 치열하게 충돌하는 장이 정치이고 그 결과물이 제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 속에서 불안과 고통을 인지하고 있다면, 그 해결점은 정치와 제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1987년 체제의 오작동을 경험했다. 게다가 2012년 이후 진보정치의 의제를 전유한 보수정치의 전략은 보수정치의 약속 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진보정치의 명분을 불투명하게 만들었고 진보와 보수의 이념대결도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권자에게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약속한 박근혜 정권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서 이 땅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듯이 현재 박근혜 정권의 공약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한국정치는 경제적 자유라는 유일한 진리에 따라서 사회안전망과 공공영역 같은 제도의 해체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근래의 한국 정치 상황에서 정치와 제도, 개인의 삶은 여전히 경제적 자유라는 블랙홀로 수렴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불안과 고통을 느끼는 개인을 구원해줄 ‘무엇’은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수동적인 소비자를 벗어나서 고유한 개인으로 거듭난 혁명적인 개인은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들이 서로 공동성에 입각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사회, 정치, 제도는 구원받을 수 있다. 결국, 불안과 고통을 호소하는 개인을 구원하는 것은 사회, 정치, 제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그러나 정치와 제도가 거대하게 오작동하는 이 사회 속에서 고유한 개인으로 거듭나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차지량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차지량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과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해오고 있다. 여기서 차지량이 말하는 시스템은 앞서 내가 말한 정치, 제도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스템의 고립은 정치와 제도의 오작동을 의미한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차지량은 시스템의 오작동을 ‘균형은 무너졌어요’ 같은 표현으로 대신한다. 차지량의 이 표현은 한국의 1987년 체제가 지금까지 산출한 오작동의 궤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그렇다면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은 수동적인 소비자를 벗어나 고유한 개인이 되었거나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개인으로,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은 정치와 제도를 직접 경험하고 사유, 실천하는 고유한 개인의 도래에 대한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차지량의 이러한 지향점이 우리 사회에서 유효한 것이 될 수 있다면 정치와 제도가 거대하게 오작동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고유한 개인이 더 많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과 차지량의 대담을 살펴보면 주목할 점이 있다. 그것은 차지량이 이 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 제시에 책임감이 없다는 점이다. 차지량은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과의 대담에서 기존의 질서보다 여러 가지 행동, 삶의 샘플들이 더 많아질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차지량이 말하는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과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은 기존의 권력화된 질서를 탈주하기 위한 샘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샘플들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차지량 자신이 이 시대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결국, 책임과 대안을 짊어지고 탈주를 실행해야 할 사람들은 차지량과 분리된 상태의 우리여야 하는 것일까. 물론, 차지량이 자기가 제시한 샘플들에 대한 책임과 대안을 우리에게 몽땅 떠넘겨야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차지량이 책임감이 없다고 그가 영원히 대안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법도 없다. 그렇다면 차지량의 역할은 그의 진술대로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과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이 태동할 수 있는 샘플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난민이 뭐지?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한국 난민’ 시리즈를 처음 접했을 때 난민이라는 개념을 생소해 하면서도 동시에 호기심 어린 태도로 대했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나에게 작용한 것인데. 첫 번째 측면은 내가 난민에 대한 개념을 잘 몰랐다는 점이고. 두 번째 측면은 도대체 난민이 나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차지량과 우리들의 ‘난민 시리즈’가 난민을 중심개념으로 삼는 만큼 난민에 대한 개념을 간단하게라도 훑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난민과 관련된 몇 가지 자료를 뒤져보면서 난민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난민에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는 난민의 기원이었다. 마침 자료 중에 난민의 기원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있었는데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유럽에서 난민이라는 개념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교회 성소(sanctuary)로 정해진 구역에 죄인과 도망자들을 도망쳐오면 그들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보살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성소에 죄인과 도망자들이 피신하면 추적자들을 그들을 체포하거나 죽일 수 없었다. 특히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유별난 신념 때문에 이러한 성소를 운용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피의자가 고의가 아닌 살인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금전적 배상이 아니라 오직 그에 상응하는 죽음에 의해서만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러한 피의 복수가 야기하는 끔찍함을 완화하기 위해서 성소를 운용해야 했다. 이러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은 유럽의 문화의 기저에 스며들어 전승되다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정치적 격변에 따라 전쟁난민이 대거 발생하자 1951년에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으로 부활했다. 따라서 난민에 대한 정의도 1951년에 제정된 난민협약에서 국제적으로 공식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1년 난민협약이 규정하는 난민은 아래와 같다. 참고로 아래에서 1951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서라는 시간적 제약은 1967년에 제정된 난민의정서에서 보완되었다.

 

“1951년 1월 1일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서, 또한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 또는 그러한 사건의 결과로 인하여 종전의 상주국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상주국에 돌아갈 수 없거나, 또한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상주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난민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난민에 대한 국제적인 규정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언급한 것 같다. 이 문제는 이 정도 선에서 접어두기로 하고. 그렇다면 난민이 우리와 어떤 연관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해방 후 한국은 난민들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였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던 1975년에 참전국이었던 국군은 베트남 난민을 한국으로 인도했었다. 그러나 난민과 관련된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혈통주의에 민감했던 한국은 베트남 난민들을 전원 제3국으로 보내버렸다. 그러나 한국이 1992년에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과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1967년)에 동시 가입하고 2012년에 난민법이 제정하면서 난민정책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덕분에 1994년에 한국 정부가 난민지위인정신청을 접수 받기 시작한 이래 그 수치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난민인권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 423명이었던 난민인정신청자가 2011년에 1,011명으로 2.5배 증가 증가했다. 그리고 2012년까지 한국에 난민인정신청을 한 난민은 5,069명이고 여기서 325명을 인정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난민인정 비율은 약 14% 정도다. 난민인정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스웨덴으로 약 73%다. 한국으로 난민인정신청을 하는 사람들의 국적을 상위만 추리면 파키스탄, 네팔, 중국, 미얀마, 스리랑카 순이다.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한국은 이미 난민과 관련된 정책과 그와 맞물린 여러 가지 통계자료까지 쌓이고 있었다. 게다가 분단국가인 한국은 탈북난민 문제와도 뗄 수 없는 관계다. 탈북난민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1989년 이후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경제적 교류가 힘들어지고 미국과의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장기적 기근과 식량부족 그리고 체제누수 현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한국에 이런 외적인 문제와 결부된 난민문제만 있는 것이냐는 생각도 든다. 한국 외부와 결부된 난민문제 말고도 한국 내부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드러나는 난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난민은 일상생활 속에서 난민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일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형식상으로 한국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난민이라는 존재양식은 일반적으로 생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상의 난민이 아니라 심리적인 차원으로 확장된 난민을 상상해본다면 심리적인 난민으로 규정될 수 있는 한국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

 

<뉴미디어를 장착한 체념이 광장을 가로지른다: 한국 난민 판매>

차지량이 제안한 ‘한국 난민’ 시리즈의 첫 번째는 <뉴미디어를 장착한 체념이 광장을 가로지른다: 한국 난민 판매>(2014년)다. 제목이 너무 기니까 <한국 난민 판매>라고 하겠다. 그런데 ‘한국 난민’ 시리즈는 난민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한국 난민 판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한국 난민 판매 신청서’를 살펴보면 난민을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 여러 시스템의 불균형이 국민 개개인에게 체념으로 쌓여 국민이 시스템의 유지를 원하지 않거나, 일원임을 포기하거나, 벗어남을 자청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난민 판매 신청서’의 내용은 앞서 살펴봤던 국제적인 난민에 대한 규정과 크게 다른 차원의 정의가 아니다. 

 

차지량은 <한국 난민 판매> 프로젝트부터 정치·사회·교육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 없는 2024년의 가상한국을 설정했다. 차지량은 우리가 몸담은 국가가 이미 손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시스템 안의 구성원을 사라지게 하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차지량의 이러한 상상이 구체화된 <한국 난민 판매>는 개인들의 체념을 난민으로 전환하여 상품으로 판매했다. 그런데 개인의 체념을 상품으로 판매하다니! 이 제안이 영 내키지 않을 사람도 분명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체념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을까? 당연하게도 ‘한국 난민 판매 신청서’ 말미에 신청자는 난민판매 등록 절차를 빠짐없이 이해했으며 이에 동의하는지 묻는 항목이 있다. <한국 난민 판매> 홈페이지에 등록된 난민상품들이 모두 ‘한국 난민 판매 신청서’를 통한 것이라면 본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동의 아래에서 상품등록 절차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동의과정 없이 상품화된 난민의 체념이 있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런 사례가 없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 난민 판매> 홈페이지에 등록된 상품화 된 체념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한국 난민 판매>에서 상품화된 체념은 한국의 제도, 문화와 관련된 거시적인 체념에서부터 개인적인 감정이 단발적으로 표현된 미시적인 체념까지 그 경향이 다양하다. 또한, 상품화된 체념이 서술하는 시간대도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현실과 가상을 기반으로 한 내용이 비빔밥처럼 뒤섞여 있다. 그런데 개인들의 체념을 난민으로 가공하는 과정이 실현하고자 하는 지점이 어디까지일까. <한국 난민 판매> 홈페이지는 현재의 국민들을 난민상품으로 전환하는 실질적인 과정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외교부가 제공하는 ‘세계 각국의 입국허가 요건’이나 비자 및 이민 관련 기사에 대한 자료도 게시해두고 있다. 또한, 프로젝트 명에서 알 수 있듯이 상품으로 등록된 난민들은 실제로 판매될 수 있고 그 수익금을 자신이 다른 국가로 이민을 가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한국 난민 판매>가 국민이 한국을 떠나서 타국으로 이민 갈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론은 국민을 난민으로 설정하는 상상적 차원을 강화하기 위한 용도로써 그 기능하고 있을 뿐이지 실효성을 보장하려고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을 난민 상품으로 등록한 사람들 중에 원래 돈이 많은 분이 아니라면 이민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 난민 판매> 홈페이지에서 난민상품 등록자들의 이민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지속적인 마케팅 활동을 따로 하는 것도 아니므로 <한국 난민 판매>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민을 위한 자금이 확보한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나도 난민 상품으로 등록했는데 아직 수익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한국 난민 판매>는 그냥 상상적인 차원에 약간의 현실성을 가미한 정도로만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한국 난민 판매>는 씁쓸하다. 개인이 자신의 체념을 난민상품으로 전환했지만 그들의 체념은 시장가치조차 없는 상품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결국, 이 과정은 <한국 난민 판매>를 그저 오락으로 즐긴 개인이 아니라면 개인들의 체념을 더욱 깊은 체념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개인들은 더욱 깊은 체념에 빠짐으로써 현실을 극복할만한 의지를 다잡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가 발생한 확률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앞서 내가 말한 것처럼 차지량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첫 번째 프로젝트로 말미암아 깊어진 개인들의 체념은 차지량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차지량의 그러한 태도에 대해서 우리가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렵다. 그러나 차지량이 제안하는 활동들이 개인들의 체념을 심화시키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와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대표의 균형이 개인을 살린다: 한국 난민 대표>

앞서 <한국 난민 판매>가 한국을 체념한 국민들이 상품화된 난민이 되어 한국을 떠나고자 시동을 걸어보는 프로젝트였다면, 같은 해 10월에 열린 <대표의 균형이 개인을 살린다: 한국 난민 대표>(이하 한국 난민 대표)는 국민이 잠시나마 난민으로서 심리적으로 국가를 떠나보는 프로젝트였다. <한국 난민 대표>는 약 백 명의 국민이 부산항에서 누리마루호 배를 타고 정해진 항로를 따라 운항하는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다. <한국 난민 대표> 역시 <한국 난민 판매>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스템이 균형을 잃었고 사람들이 과열된 체념이 흩어지고 있다는 설정을 공유한다. 누리마루호에는 ‘한국 난민 대표단’이 미리 승선해있었다. 누리마루호에 승선한 국민들은 배가 운항하는 시간 동안 ‘한국 난민 대표단’ 가운데 한 명을 난민들의 대표로 선출하는 정치적인 행사를 직접 경험했다. ‘한국 난민 대표단’은 총 5명의 후보로 구성되어 있었다. 5명의 후보는 다음과 같은 설정을 취하고 있다.

 

기호 1번은 인간문화재로서 국가적인 행사에서 자신의 예술을 제공해왔다가 국가가 망해서 다른 국가를 찾아 나선 자이다, 기호 2번은 비인기 연예인이었다가 정치를 하기 위해서 10년째 단식했고 지금은 난민을 위한 단식을 시작하겠다는 자다, 기호 2번의 설정을 보니 작년에 세월호 추모 광장에서 단식했던 가수 김장훈이 떠오른다. 기호 3번은 외국에서 풍요로운 유학생활을 즐겼던 재벌 4세였으나 한국에 대참사가 발생하면서 정치탄압에 표적이 된 아버지가 의문사를 당하면서 가업이 무너졌다는 설정을 취하고 있다. 또한, 기호 3번은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카메라를 들고 난민들을 촬영하고 있고 동시에 난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기호 3번의 설정은 구원파 지도자이자 세모그룹의 총수였던 고 유병언을 모티브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기호 4번은 한 때 지역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여러 번 선거에 나갔지만 모두 낙선했었으며 이제는 난민 옆에서 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설정이다. 마지막으로 기호 5번은 아시아의 안보위기가 날로 높아져 미성년의 국방의무가 생긴 시대에 군으로 입대했으나 군대의 낡은 체계에 회의를 느끼고 탈영한 청소년이다.

 

<한국 난민 대표>의 주된 골자는 누리마루호에 승선한 국민들이 앞서 열거된 다섯 명의 ‘한국 난민 대표단’ 중의 한 명을 앞으로 난민으로서 자신들을 대표할 대표자로 뽑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 난민 대표>는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서 큰 탈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한국 난민 대표>는 <한국 난민 판매>에 비해서 여러모로 몰입도와 이해도가 떨어졌다. 내가 몰입도와 이해도에 문제를 느낀 가장 큰 이유는 <한국 난민 대표>를 이끌어 나가는 차지량 일인이 감당할 수 없는 국민들의 규모에 있다. 누리마루호에 승선했던 국민들 중에 <한국 난민> 시리즈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100여 명 중에 얼마나 되겠는가. 누리마루호에 승선한 국민들 중에는 대부분이 <한국 난민> 시리즈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한국 난민 판매>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물론, <한국 난민 판매>를 경험한 국민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한국 난민> 시리즈를 관통하는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난민 판매>와 <한국 난민 대표>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각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민에게 난민 지위를 무작정 부여하려고 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각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민들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난민>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난민을 자신과 동기화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한국 난민 판매>의 경우 리무진 차량 안에서 차지량이 소수의 국민과 함께 서울 일대를 돌면서 미래와 현재의 체념과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기에 국민들이 난민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단서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난민 대표>에 참여한 100여 명의 국민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수동적으로 보고, 듣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누리마루호에 승선한 국민들은 그저 자신들이 망해버린 대한민국의 난민이며 이에 체념한 국민이라고 호명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에는 아직 한국이 망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체념에 빠져서 한국을 떠나기보다는 한국을 우리가 체념에 빠지지 않을 만한 국가로 정상화하는데 기여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의 세계관이 상호 소통될 수 있는 과정이 <한국 난민 대표> 내부에 없었다. 물론, <한국 난민 판매>가 설정한 시간은 2024년이었고 내가 2024년의 한국에 있다면 한국에 체념하고 난민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2024년 한국이 <한국 난민>시리즈가 설정한 최악의 상황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 만화 『베르세르크』에서 가츠가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2024년 한국이 그토록 절망적인 곳이라면 다른 국가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나만 해도 이처럼 <한국 난민> 시리즈가 제시하는 세계관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누리마루호에 승선했던 100여 명의 국민들 중에 <한국 난민> 시리즈가 제시하는 세계관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상호 소통되는 시간은 없었고 물리적으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 안에 원활하게 상호 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국 난민 대표>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이 상호 소통되는 과정이 누락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누리마루호에 승선한 국민들이 <한국 난민>을 관통하는 주제를 심도 있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누라미루호에 승선했던 국민들 간에 국가는 무엇이고 난민은 무엇인지에 대한 소통이 없었는데 <한국 난민 대표>가 제시하는 세계관에 국민들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을까. 차지량이 <한국 난민 대표>에서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국민들을 필요로 했던 것은 아마도 선거라는 상황을 성립시키기 위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지량이 선거라는 상황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100여 명의 국민들을 필요로 했다면 그들과 사전에 충분한 상호 소통의 과정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한국 난민 대표>에 관련된 내 생각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밑줄을 긋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난민 대표>부터 대표자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 난민’ 시리즈가 미래의 한국에서 살아가던 국민들이 난민의 지위로서 대량으로 사라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인 만큼 그 규모를 조직할 대표를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아마도 차지량과 그의 동료들은 <한국 난민 대표>가 마무리된 이후에 자연스럽게 세 번째 프로젝트가 나아갈 방향성을 대표자와 관련지어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한국 난민’ 시리즈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미래의 한국 난민 대표단과 현재의 한국 대표자가 협상을 벌이는 것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멈출 수 있는 미래의 환영: 한국 난민 협상>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 난민 대표>(2015)의 또 다른 제목인 ‘대표의 균형이 개인을 살린다.’는 ‘한국 난민’ 시리즈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의 한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현재의 국민(관객), 균형이 무너진 가까운 미래에서 떠내려온 난민의 만남과 협상으로 구성되었다. <한국 난민 협상>은 꽤 긴 시간 동안 복잡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난민 협상>의 경우에는 내가 프로젝트 팀원으로 직접 참여한 경우였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복잡한 진행과정들을 좀 더 자세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한국 난민 협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국회의원을 프로젝트 당일에 협상의 장소로 얼마나 초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두 가지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한국 난민 협상>도 페스티벌 봄과 연동되어서 진행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 안에 프로젝트가 개막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 난민 협상>이 개막하는 날은 4월 17일이었다. 그런데 재보궐 선거가 4월 29일에 있었기 때문에 4월은 국회의원들에게는 여러모로 분주하면서도 조심스러워지는 기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프로젝트 개막 직전까지 계속 터진 정치적 쟁점들, 이를테면 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 같은 사안들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민감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설령 <한국 난민 협상>의 성립에 저항력을 발휘하는 외부적인 사안이 없었더라도 원래 국회의원을 섭외하는 일이 쉽지 않은 판에 이러한 여러 가지 명확한 악재가 있다는 것은 <한국 난민 협상>의 실패확률을 급상승시켰다. <한국 난민 협상>의 또 다른 제목인 ‘멈출 수 있는 미래의 환영’이 포스터 디자인에서 ‘멈출 수 없는 과거의 환영’과 서로 맞닿아 있는 모습도 난민협상단이 이 프로젝트에 도사리는 다양한 악재와 실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 협상단은 <한국 난민 협상>을 기존의 계획대로 끝까지 밀어붙였다. 난민 협상단이 <한국 난민 협상>을 그대로 밀어붙인 것은 아마도 실패에 대한 문제보다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조조가 어차피 빼앗길 형주를 오나라와 촉나라의 분열의 기점이 되도록 유도하고 잃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한국 난민 협상>이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를 고민했는가에 관한 문제는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차지량이 행보가 어떤 곳을 향하는지 살펴봐야 적절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난민 협상>이 어떻게 실패했는가에 대한 문제는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고. 우선 <한국 난민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 <한국 난민 협상>의 구성부터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먼저 <한국 난민 협상>을 구성하는 3대 축인 대표자, 국민, 미래의 난민에 대한 세부사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표자의 경우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의 한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므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대표자는 진짜 현직 국회의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국민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한쪽은 119수난구조대에 입장해서 협상을 관람 및 참여할 현재의 국민이고 다른 한쪽은 15일간 난민협상단과 개별적으로 만나온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체념하고 있는 국민이다. 난민협상단은 후자의 국민들을 ‘뜨거운 국민’ 이라고 명명했었는데 본 후기에서도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난민협상단은 한국사회 각 분야에 대하여 체념한 현재의 국민들과 4월 1일부터 15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한국 난민 환영’이라는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는 4월 17일 본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프로젝트라고 보면 될 것이다. 미래의 난민들은 불참 및 만남 취소를 제외하고 총 39명의 만남 신청자 중에 29명의 현재의 국민과 만날 수 있었다. 이 만남의 과정을 간단하게 서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서강대교 북단에서 접선한 미래의 난민과 현재의 국민은 미리 준비된 리무진을 타고 여의도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본 다음에 함께 국회에 들어가 ‘대정부 질문’ 같은 현장을 직접 살펴보게 된다. 이후 이들은 마지막 순서로 <한국 난민 협상>의 현장인 여의도 부근 한강 둔치로 이동해 4월 17일에 협상의 장소(르네상스호)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여기서 리무진은 <한국 난민 판매>에서 등장했던 리무진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한국 난민 판매>에서도 국민들은 난민 판매를 위한 등록이 끝나면 리무진을 탑승하고 종로, 시청, 청와대 일대를 순회했다. 이 순회과정에서 미리 리무진에 몰래 탑승하고 있던 차지량은 리무진에 탑승한 국민들에게 미래와 현재를 아우르는 체념사를 낭독했다. 리무진에 탑승한 국민들은 차지량의 체념사를 들으며 리무진의 가로로 긴 창문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마치 영사된 화면처럼 바라보게 된다. 이 묘한 상황은 개인마다 다른 맥락의 감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리무진에 탑승한 국민들을 관통하는 공통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공통감정이 현재의 대한민국과 개인들의 세계관이 서로 심하게 어긋나 있다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에게 이 공통감정은 평소에 일상 속에 은폐되어 있어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리무진이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자신이 몸담아온 국가를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러한 과정은 차지량의 체념사 낭독과 폭탄주를 마시고 건배하기, 각국의 정상들이 손을 흔드는 아리랑 영상 감상, 난민증 발급을 통해서 극대화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국민이 갑자기 자신에게 제시된 난민성을 자신의 현재와 동기화하고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감정의 차원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물론, 난민, 국민,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심도 있게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장은 <한국 난민 판매>에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난민’ 시리즈가 학술대회를 하는 것도 아니니 애초에 그러한 소통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난민 판매>는 국민이 난민과 국가에 대해서 감정의 차원에서 사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반면에 <한국 난민 대표>에서는 <한국 난민 판매>의 리무진과 같은 과정조차 없었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한국 난민 대표>를 함께 경험하는 국민의 수가 너무 많았다는 조건이 촉발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난민 협상>에 다시 등장한 리무진도 <한국 난민 판매>의 리무진처럼 현재의 국민이 난민협상단이 제시한 미래의 난민, 국민, 국가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그 정보를 자신들의 현재와 동기화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차지량의 낭독이 음성으로만 들리고 그 자리를 미래에서 온 사이보그 난민으로 설정된 EVE의 의전으로 대체했다는 점 정도다. 마지막으로 <한국 난민 협상>을 위한 사전 프로젝트였던 ‘한국 난민 환영’에서 꽤 큰 빗나감이 있었던 것을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한국 난민 환영’에 초대된 현재의 국민 중에는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판결로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당한 통합진보당 출신 김재연 전 의원이 있었다. 앞서 ‘한국 난민 환영’의 진행방식을 언급해서 알겠지만, ‘한국 난민 환영’에 참여한 현재의 국민은 가능하면 국회의사당을 참관하는 코스를 밟아야 했다. 그런데 나는 당시 국민배지를 달고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갔던 김재연 전 의원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는 소식을 다른 팀원에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차지량에게 김재연 전 의원이 국회출입을 불편해 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전협의 없이 식순을 진행한 것이냐고 물어봤었다. 나의 질문에 차지량은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다고 답했다. 김재연 전 의원에 관련된 문제가 고의가 아니라 ‘한국 난민 환영’을 진행한 차지량과 동료들이 김재연 전 의원의 입장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니 그들을 무작정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것은 차지량이 이 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자신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개인들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간혹 소홀히 하지 않을까에 대한 지점이다. 예술가가 항상 도덕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상대방이 폭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동의의 과정 없이 진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제 <한국 난민 협상>의 본 프로젝트인 난민 협상이 진행된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협상은 한강 위에 고무보트를 타고 떠 있는 미래의 난민과 환영선인 르네상스호, 컨트롤타워인 119 수난구조대 건물 3곳에서 이뤄진다. <한국 난민 협상>은 차지량이 제작한 <만질 수 있는 꿈>(2015) 상영으로 시작한다. 이 영상은 전복된 기차, 배, 항공기가 베개에 의지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3D모델링으로 구현한 것이다.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 고립된 탈것들이 베개에 의지한 상태로 부유해 있는 모습은 난민의 생존을 암시하는 듯했다. 이후 미래에서 떠내려온 난민들이 자신들의 체념을 낭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시간 동안 대표자와 뜨거운 국민이 승선한 르네상스호가 고무보트에 몸을 맡긴 미래의 난민들과 거리를 좁히게 되고 난민들은 자신들의 난민 깃발과 구조의 메시지를 담은 스케치북을 흔든다. 그리고 한강 위에서 유일하게 협상에 참가한 현직 국회의원 김광진 의원과 뜨거운 국민, 그리고 미래에서 떠내려온 난민들 대화가 이뤄졌다. 이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은 미래의 난민들이 현재의 한국으로 떠내려온 이유에 대한 것과 현재의 한국이 처한 상태, 현재의 국민들이 체념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르네상스호에 승선했던 뜨거운 국민 중 몇 명은 난민들과 교신을 하기 위해서 김광진 의원과 1:1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이 모습은 굉장히 묘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현재의 국민이 현재의 한국을 어떻게 체념하고 있는가를 미래에서온 난민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현직 국회의원에게 자신의 불만을 직접 토로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뜨거운 국민과 국회의원이 마주 보고 대화를 하는 상황은 가상과 실제가 맞물린 직접민주주의 그 자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앞선 과정이 이뤄진 후에 미래에서 떠내려 온 난민들을 현재의 한국에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투표를 하는 순서에 접어들었다. 이 투표는 르네상스호에 승선한 국민뿐만 아니라 컨트롤타워인 119수난구조대에서 협상을 지켜보고 있던 국민들도 참여했다. 10분의 표결시간 동안 한국 난민들의 공통 트위터 계정에서는 투표에 대한 의견을 남기는 시간이 진행되었다. 투표는 반대와 찬성을 뜻하는 카드를 들거나 들지 않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투표 결과는 카드를 들지 않은 사람이 9명, 찬성이 27명, 반대가 4명이었다. 찬성 측을 대변한 뜨거운 국민 중 한 명은 자신이 결정을 생명권에 입각해서 이야기했다. 이와 반대로 반대를 선택한 뜨거운 국민 중 한 분은 실질적으로 체감되는 고통은 각자가 짊어져야 할 가치이고 현재의 한국으로 굳이 오실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달라고 이야기 했다. 사실상 미래에서 떠내려 온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정이 27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한국 난민 협상>은 미래에서 온 난민을 현재의 국민들이 환대해주는 장면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의 한국에서 온 난민들의 반응은 협상이 실패했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찬성표를 던졌던 현재의 국민들 입장에서 미래에서 온 난민들의 이러한 입장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찬성표가 무려 27표인데도 미래에서 온 난민들은 굳이 협상이 실패했다고 현재의 국민들에게 통보하고 교신을 끊어버렸다. 심지어 차지량은 교신을 끊는다는 말을 한 이후로 한강에 스스로 빠졌다. 미래에서 온 난민들의 이러한 입장표명은 협상을 지켜보던 국민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여전히 나는 <한국 난민 협상>이 왜 베드엔딩으로 귀결되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투표결과가 긍정적인 방향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난민들의 입장표명도 표결과 연동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현재의 한국으로 받아들여진 미래에서 떠내려온 난민들의 가슴에 현재의 국민들이 국민 배지를 달아주는 훈훈한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 난민 협상>은 이렇게 종결되었고 동시에 ‘한국 난민’ 시리즈도 종결되었다. 지금까지 세 가지 프로젝트를 간략하게 살펴봤는데. 이제 ‘한국 난민’ 시리즈에서 우리가 길어 올려야 할 의미가 무엇인지 정리해 봐야 할 것 같다.

 

‘한국 난민’ 시리즈가 남긴 의미

‘한국 난민’ 시리즈가 차지량과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상징가치이긴 하지만 발안자로서의 차지량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발안자로서의 차지량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이 ‘한국 난민’ 시리즈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차지량이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과 진행한 대담을 다시 언급하면,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가 샘플 만들기라고 했다. 여기서 샘플 만들기는 자신이 제안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실제로 특정 행동을 해보고 다른 방식의 행동을 해볼 수 있는 창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차지량의 이러한 바람을 그의 익숙한 구호로 바꾸면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과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그의 방향성은 앞서 내가 말한 것처럼 1987년 체제 이후 정치와 제도가 거대하게 오작동하는 한국사회 속에서 어떻게 고유한 개인이 나타날 수 있는가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차지량이 제안한 특정 행동을 해보고 다른 방식의 행동을 해본다는 것은 고유한 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극복해야만 하는 두려움을 대면하는 것과 연결된다. 본 후기에서 차지량이 그동안 제안했던 다른 참여형 프로젝트들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른 프로젝트들도 큰 범주에서 ‘한국 난민’ 시리즈와 공유하는 지점들이 있다. 아마도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차지량이 제안했던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종합되어 논의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한국 난민’ 시리즈는 난민화된 국민으로 시작해서 대표자로 귀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공간의 엇갈림이 가미되며 역설적으로 현재 우리에게 닥친 상황이 새로운 시점으로 재구성되었다. 특히 근미래라는 설정으로 시공간을 설정한 ‘한국 난민’ 시리즈는 그리 먼 미래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현재와 미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 난민’ 시리즈의 근미래 설정은 윤석남 작가의 “나는 지상으로부터 20센티미터 정도 떠 있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너무 높으면 자세히 볼 수 없고 현실 속에 파묻히면 좁게 볼 수밖에 없다.”라는 말과 상통하는 맥락을 품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닥친 현재 상황을 새로운 시점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 우리가 ‘한국 난민’ 시리즈를 통해서 취해야 할 유효성이라고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이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유효성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한국 난민’ 시리즈를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한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난민’ 시리즈를 모두 경험하거나 참여했던 내 입장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내가 말한 것처럼 현재의 국민을 난민으로 설정해 국가를 떠나게 한다는 설정은 나에게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처한 상황이 난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난민은 곧 국가 안에서 몫이 없어져 버린 자들이다. 1987년 체제 이후 줄곧 한국사회에서 몫이 없었던 계급 중에 하나가 노동자들이었다. 과거에 전태일 열사 덕분에 근로기준법에 대한 인식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은 점차 보장되어갔다. 그러나 현재 기륭전자-스타케미칼-쌍용차-C&M 해직노동자과 같은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몫이 없는 자들로 취급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사회에서 몫이 없는 자는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이 사실을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증명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경찰에게 캡사이신 물총과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맞는 모습은 정녕 난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국민을 버린 국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한국 난민’에 참여했던 국민들의 체념들도 이러한 한국사회의 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한국 난민 협상>에서 발언한 뜨거운 난민들이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하여 체념한 국민들인데도 불구하고 더러 세월호 참사를 언급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빈번하게 난민과 다를 바 없는 불가해한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국민을 난민으로 전환하는 ‘한국 난민’ 시리즈가 일상생활 속에서 은폐되어 있던 국민의 체념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이미 상존하는 국민들의 체념에 난민이라는 겉옷을 덧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 난민’ 시리즈는 우리들의 체념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체념을 다른 차원으로 마주하게 하거나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한국 난민’ 시리즈의 이러한 방향성은 <한국 난민 판매>와 <한국 난민 대표>에 국한되었고, <한국 난민 협상>에서는 미묘하게 해소 지향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적어도 <한국 난민 협상>이 거대하게 오작동하는 정치와 제도를 가상의 상황을 발판삼아 직접 마주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시도에 대한 결과 중의 하나가 유일하게 <한국 난민 협상>에 참여한 김광진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차지량이 그동안 진행해 온 프로젝트의 귀결점이 대체로 개인의 체념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탓일까. <한국 난민 협상>은 27표의 찬성표에도 불구하고 베드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 난민 협상>이 해소 지향적인 방향으로 완벽히 선회한 것이기보다는 미묘하게 선회한 것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 난민 협상>의 이러한 미묘한 선회는 마치 윤상의 <악몽>(1998)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꿈이라고 여기는 절망적인 상황을 읊조림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사와 공명하는 멜로디의 외피가 빠르고 경쾌한 음색으로 구성된 것과 유사하다.

 

‘한국 난민’ 시리즈의 시작점과 도착점이 대체로 체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 나는 ‘한국 난민’ 시리즈를 통해서 기존의 체념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동력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 난민’ 시리즈는 내가 기존에 품고 있는 체념에 난민이라는 겉옷을 덧씌워서 이름만 바뀐 체념을 마주하게 한 것에 가까웠다. ‘한국 난민’ 시리즈는 사회 시스템의 불균형과 고립을 난민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역설해왔다는 점과 이 역설이 실제 시스템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성립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의미한 가치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유의미한 가치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과 그 가치를 개인들이 각자 어떠한 유효성으로 받아들이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한국 난민’ 시리즈가 품은 가치는 차지량의 구호처럼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과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의 탄생을 위한 산파술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차지량과 그의 동료들이 그동안 들인 노력에 비해서 그 가치가 사회적으로 충분한 반작용을 유도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만약 ‘한국 난민’ 시리즈가 품은 가치가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인 반작용을 끌어낼 수 있었다면 나도 기존에 품고 있었던 체념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동력을 ‘한국 난민’ 시리즈에서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혁빈의 말처럼 확실히 차지량은 ‘한국 난민’ 시리즈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동안 그가 제안했던 묵시록적인 프로젝트와는 다른 차원의 영역에 발을 옮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국 난민’ 시리즈에서 기존의 체념을 해소할 동력을 얻지 못한 것과는 별개로 차지량이 새로운 차원의 영역에서 어떠한 가능성을 보았는지 궁금하다. 만약 차지량이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샘플을 제안하기 위해서 다시 나선다면 그는 예전과 여러모로 많이 다른 맥락과 방식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지 않을까.

홍태림 (생활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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