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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대상 전문가 매칭 프로그램 원고

차지량 작가는 2012년 부산비엔날레에 2채널 비디오 영상 설치를 관객들에게 남겨놓고, 홀연히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들의 일탈과 저항을 수행하는 프로젝트를 지향하는 작가 스스로, 그의 몸을 ‘시스템 밖’으로 보내는 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것도 위장결혼이라는 제도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위장결혼 하지 않았다. 작가는 2012년 초, 성년이 된 이후, 혹은 사회로 부터,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성취 한 이후 개인사적 충돌을 겪는다. 결혼 그리고 자본 혹은 그것 집적된 가족에 대한 복종이자 충돌이다. 이것은 작가에게는 깊은 우울로 침잠하게 했다. 그럼에도 작가는 <New Home>등을 발표하며, 전작인 <일시적 기업>, <세대독립클럽>를 잇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자 작품으로서의 실험을 수행했다. 2012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영상 설치에는 작가의 뜻하지 않은 고백들이 실려있다. 1980년대 말 대한민국 서울, 강남에 살았던, 그러나 주식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재개발과 부동산을 정점으로 대한민국의 자본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때, 강남 땅을 순순히 내어주고야 말았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선 떠돌았던 삶. 제대로 된 미술대학 나오지 못해 제도권 미술과는 담쌓을 수 밖에 없는 작가로서의 환경. 이 모든 이야기가 마치 고백처럼 혹은 작가 자신이 아닌 듯 담담하게 기술되고 있다. 1980년대 말은 민주화라는 우리사회의 분기점이 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동산과 주식을 정점으로 하는 한국식 자본주의가 고속도로건설이나 경제개발을 너머 제2의 얼굴을 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작가가 집안의 개인사로 꺼내기를 주저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은폐했던 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그 시대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본화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것은 주식 그리고 아파트로 수렴되는 역사다. 나는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전원일기’ 속에서 주식을 하다가 폐가 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주식과 아파트 사이에는 자본의 욕망에 대한 국가적인 캠페인이 있었음을 재인식했다.

 

시스템으로부터 탈각한 개인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개인’으로 수렴한다. 작품의 표면상에 드러나는 것은 시스템을 겨냥하는 ‘개인’의 감각 혹은 감성으로의 소구이다. 그 감성의 발단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혹은 왜 이러한 질문을 갖게 되었는지 채 설득되지 못한 채, ‘행동(Action)’으로 보여주는 개인들의 일시적인 공동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때, 설득되지 못한 혹은 보이지 않는 질문 속에 혹은 표면상 드러나지 않는 것은 바로 ‘역사적 개인’이다. 그것은 시스템을 구성하면서도 시스템에서 탈각해 버린 개인이다. 그것은 바로 1980년 말의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2000년대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특히 흥미롭다. 과거 유교적인 전통과 가치 그리고 공동체 문화로서 그 문화를 지탱했던 한국 사회가 IMF 이후 특히 변화해왔던 과정 그리고 ‘개인주의’로 소구되는 과정 사이와 연계가 뚜렷해 보인다. 그것은 IMF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겪으며 정신적 가치와 물질 사이의 가치 대립에서 청년들은 물질적 가치에 시선을 돌리거나, 무력해진 사회 전체의 시스템에 기댈 것 없는 치열해진 경쟁사회 속에서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혹은 감성으로 그 해결책을 모색해왔던 과정과 닮아 있다. 또한 1980년대 전후 그리고 IMF 전후로 중산층 신화를 양산한 시스템 안에서의 욕망 게임 속에서 좌절한 개인들의 삶과도 닮아있다.

 

게임에 동참하긴 마찬가지지만 그 배경과 진행 양상, 결과가 제각각이다. 이는 4・19세대, 유신 세대, 386세대 등 한국사회의 경제, 정치, 문화를 뒤흔들어 놓은 변곡점에 있어 그들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었는가가 주요하다. 말하자면 “제2차 경제개발계획이 성공적으로 제 궤도에 올랐던 1960년대 후반, 제 2차 유류 파동이 오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직전인 197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의 198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1990년대 중반,” “IMF 외환 위기 이후 바이 코리아 열풍-카드 대란-아파트 버블로 이어지던 2000년대 초중반” 등의 버블의 시기를 그들이 “몇 차례 경험했”고 또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따라 그들의 ‘집’과 ‘계층’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아파트 게임> (2013) 박해천

 

일시적이고 무기력하게 시스템에 침입, 시스템 안의 균열을 시도하기

 

작가는 ‘동시대’의 문제의 근원을 ‘견고화된 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이 ‘견고함’은 말하자면 이제는 ‘되찾을 수 없는 강남땅’ 즉 작가의 아버지가 ‘잃어버린 강남땅’을 ‘되찾을’ 확률 혹은 ‘기하급수적으로 고착화 되어버린 자본의 속성’과 같은 ‘견고함’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 해결을 위해 작가는 ‘시스템’과 ‘개인’의 대결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방식을 고안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견고함’을 대하는 방식으로 ‘일시적’인 것, 그리고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무기력’을 선택한다. 이러한 ‘일시적이고 무기력한’ 작가의 선택을 통해 실질적으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가의 문제는 또 다른 질문의 영역이다.

 

작가 차지량은 모두가 잠든 새벽, 어둠에 잠긴 공사현장 속으로 아직은 그 누구의 실질적 주거가 이루어지지 않은 그곳, 바로 <New Home>으로 주거 침입을 시도한다. <New Home>은 ‘도시계획에 관여하지 않은 세대가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여 새로운 집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는 시스템에서 탈각한 개인들 혹은 권리가 없는 개인들의 시스템에 대한 침입 시도이다. 그것은 어떠한 모양새인가. 작가는 참가자를 모집하여, 주거 침입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빈 집을 분양하고, 하루동안 빈 집에서 주거하기를 시도한다. 아직은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그 현장에서 이 개인들의 침입 행위는 집 안의 구조에 균열을 가하는 행위들로 작은 테러를 감행한다. 빈 집에서 기름기 넘치는 ‘삼겹살’을 옹기 종이 모여앉아 구워먹고 벽에 냄새를 베게 하는 행위에서부터 아직 마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천장 사이에 후식으로 먹은 복숭아씨를 버리는 행위까지 이어진다. 그것은 앞으로 썩거나 마르거나 혹은 파리나 벌레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 분명해보이면서도, 만일 이 공사장에서 아무도 다시 천장을 살피지 않는다면 그곳에 영구적으로 남게 될 시스템에 균열을 가하고자 하는 기념비적인 시도이다. 그리고 밝아 오는 아침사이의 새벽, 공사인부들이 다시 들어오는 시간, 자본이 작동 혹은 시작하는 시간을 비켜 다시 개별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공연 <New Home>에서는 그야말로 주변 기초 시설물도 없이 당랑 아파트만 지어지고 있는 청라지구의 현장에서 시도되었다. 관객들과 청라지구 주변을 걷고 빈 땅을 배외하다가, 극장으로 돌아와 준비된 밴드 공연을 듣고, 빈 극장에서 잠을 청하고, 새벽 6시에 어렴풋이 ‘빈 집’의 수행자들의 인터뷰와 목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1박 2일 퍼포먼스를 시도한다. <New Home>의 전작 <일시적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공연을 혹은 전시를 관람하러온 관객들에게 기업이냐 개인이냐를 선택하는 난감한 면접 이후에 사원으로 고용하고, 그들의 주 업무로 ‘오피스 테러’를 주문한다. 이는 총(물총)과 폭탄(물 폭탄)을 들고 행하는 야간의 기업 사무실에 침입하는 방식이다. 물총과 폭탄 뿐 아니라, 기업 사무실 벽면에 A4지로 출력한 다양한 청년들의 이력서들을 오려, 테잎으로 고정하여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시적인 부착과 균열 이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망가는 방식의 전개이다. 여의도의 각 기업들, 종로구의 기업 빌딩들에서 시도된 이 오피스테러는 관리구역이라는 첫 번째 관문이 통과되고, 엘리베이터 혹은 바코드를 읽는 방식의 출입구만 지나게 되면, 일사천리로 테러는 감행되는 방식이었다. 행여 관리실에 발각 되거나, 종종 야근을 하는 시스템 내부자(기업의 사원들)에게 테러가 적발될 시에는 테러는 좌절되었다. 기업체들이 집합되어 있는 빌딩 숲에서의 오피스테러가 종료된 이후에는 여의도의 옥상 어딘가에서 다양한 물총과 야광찌들로 기업 빌딩들을 향해 난사하는 행동(Action) 그리고 작은 불꽃들을 난사하는 행동을 취하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행위는 기록되었고, 2차 편집되는 영상에서는 이 행위들은 불꽃놀이로 그리고 건물폭파 행위로 전환되었다. 이 때, 이러한 허구적 행위에 덧붙여지는 영상에서의 파괴적 행위는 작가 스스로가 가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혹은 기업 시스템에 대한 비평 혹은 조롱이자 테러 행위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력하기만 하다. 아마 그 무력함은 어쩌면 시스템에서 탈각된 그러나 실제로는 시스템을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개인들의 무력함의 표상일 것이다. 이 때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시스템에 가하는 균열’로서의 예술행위가 ‘실제’로 어떤 파급효과를 양산했을 때 그것은 일종의 혁명 실험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예술의 순수한 가치와 그를 통한 총체적 사회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모더니즘의 신화가 힘을 잃고 진부해진 이후 재전유(détournement)와 같은 창작 방식이 중요해진 이유는 총체적 권력에 대한 비평적 대안의 논리가 전복하려는 권력적 대상의 논리와 일치할 때 도리어 그 허술한 부조리와 불합리함을 직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일시적 기업의 일시적 직원이 대기업의 고층건물에 터트리는 화염은 컴퓨터로 처리된 그래픽 효과일 뿐이다. 파괴적 제스처는 혁명운동이 아닌 몽유병 환자의 배회에 가깝다. '일시적 기업'의 반기업 테러리즘은 몽상도 도발도 아닌 중간적 수사로 작동한다. 자위적 환상도 과격한 행동주의도 아닌, 일시적 서사다. 실재와 허구, 현실과 연극 사이에서의 연출된 진동은 스스로의 설득력을 무효화한다. 대기업 문화에 대한 비평적 관점 자체가 텅 빈 메아리처럼 허하게 울린다. 그 허함은 자본주의의 견고함을 고하는 역설이 된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서현석, <일시적 저항, 총체적 불화> 차지량 작가론 (2011))

 

안면 후드티로 얼굴을 가린 무기력한 테러리스트가 세상에 나아간다는 것

 

시스템을 겨냥하는 테러리스트로서의 자임일까, 작가의 복장은 언제나 이색적이다. 보통의 테러리스트로서의 연상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어딘가 주눅이 들어있거나 혹은 얼굴을 내보이기 싫다는 듯 후드 티의 모자를 잘생긴 작가 머리 위로 덮어내는 방식이다. 작가는 중무장을 하고 프로젝트에 나서는 모양새이지만, 관객들에게는 다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아니라면 얼굴이 전면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생기는 답답함 정도의 모양새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언제나 얼굴을 감싸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거나 혹은 익명의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 사회에서 탈락해버린 상처의 발현인지 그렇지 않다면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작가 개인의 역사와도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이 ‘개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래서 중요하다. ‘개인’의 다각적인 몸과 시스템에서의 실험은 ‘집단’에서의 ‘대척점’에 있기에 우리는 ‘시스템을 거부하는 개인’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아마도 차지량 작가에게 앞으로 기대를 갖게 하는 부분은 바로 이 ‘개인’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사실, 분노란 가장 강력한 언어이다. 이 ‘무기력’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분노’이다. 그것은 질문이다. 그리고 ‘일시적’일 수 없다. 차지량 작가에게 이 질문이 가능한 것은 이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탈락한’ 경험과 삶에 대한 탐구에 실마리가 있다. 작가가 선택하는 ‘일시성’과 ‘무기력함’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좀더 단단한 미학적이고 실천적인 발의가 필요하다. 이상한 말이지만, 이전의 차지량 작가의 작품에서 우울을 느꼈다. 우울의 기세는 대단했지만, 이내 수그러뜨리고야 하는 마무리들에 아쉬움이 많았다. 무기력했다. 분노하고 있지만, 화는 내지 않고, 자신에게 침잠해버리는 우울. 하지만, 나는 이 분노와 비밀이 ‘집단’과는 반대점의 ‘개인’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증언하고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역사의 ‘개인’이 될 때, 그 때 새로운 상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역사적 주체이다. 우리를 탈락시켰던 혹은 우리들을 계속해서 욕망하게 만들었던 시스템에 반기를 들 사람은 우리 자신 뿐이다. 그러한 자각으로 이루어진 개인이라면, 얼마든지 이 개인들의 ‘개인주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곳에 ‘신화’를 거부하는 새로운 세대의 상상으로 ‘일시’적인 변혁을 꿈꿀 수 있다. 여기에서 ‘일시성’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작가에게는 이 ‘고착화된 세계’ 자체가 아마도 악몽일 것이며, 이 악몽을 ‘혁명’을 통하여 다시 강요하는 또 다른 ‘고착’의 ‘폭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일시적이고 무기력함’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낯설게 표출되는 작가 고유의 미학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가능성과 진부함 사이에서 혹은 ‘균열에의 미학’을 획득할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연구와 실험이 감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즉 ‘일시’성이 시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연구 그리고 ‘무기력함’이 힘에 비례하는 물리적인 효과와는 다른 세계로의 고안이 절실해 보인다. 그곳에 역사적 개인이 있다. 얼굴을 드러내거나 혹은 여전히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체로.

 

 

임인자(기획자, 연출가)

 

임인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학과(이론/연출 전공)와 동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서울변방연극제 사무차장,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2010년부터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강화정, 정금형,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이철성), 그린피그(윤한솔), 크리에이티브 바키(이경성)의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제9회 서울변방연극제/다원예술분야/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0년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 (크리에이티브 바키(이경성) 공동주최 《도시이동연구 혹은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도시횡단프로젝트 광주》프로젝트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현재 월간 『한국연극』편집위원, 한국거리예술센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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