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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마당 '서교육십 : 상상의 아카이브 전시' 작가 추천사

2008년 충무아트홀 공모전에서 보여졌던 차지량의 전시 작업들을 보면서 ‘리얼리티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느낌은 매우 반가운 것으로, 미술계에 진입하기를 원하는 수많은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소위 매끄럽고 재치 있으며 두뇌 플레이가 돋보이는 고만 고만한 엘리트형 작업들에서 좀처럼 받기 어려운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가건물과 같은 곳에서 서울 변두리의 삶을 살고 있는 ‘왕년의 야구왕’이라는, 작가 자신의 경험적 사실에 기초한 허구적 이야기 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마치 영화 시놉시스를 만들어가듯이 자료와 사진, 편지, 영상 설치물들을 배치하여 젊은 세대의 주변부 삶의 정경을 보여준 작업이었다. 차지량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는 노숙자, 일용직 사람들, 떠돌이들은 이상을 꿈꾸지만 척박한 도시의 삶을 살아간다. 여관 한 모퉁이 혹은 가건물에서 생활하면서, 가족이나 옛 여자 친구의 편지에서 위로를 받으며,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의 솔직한 소통을 통해 그들만의 도시적 삶을 형성해간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다분히 드라마적 통속성을 내포하지만, 작품 자체의 자족성에서 끝나버리거나 난해한 개념으로 무장된 이야기들 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차지량의 작업에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분명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진 작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갈 줄 안다. 그는 지하철 역이나 거리에서 시 낭송이나 소극 형태의 공연들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통할 수 있는 대안적 지점들을 꾸준히 확장시켜왔다. 2009년 스페이스 캔에서 행해졌던 ‘옥상에 사는 물고기들’ 이라는 퍼포먼스는 전시 장소로 사용되지 않는 옥상 공간을 활용하여 제도권 미술공간의 또 다른 쓰임새를 유도하면서, 작가와 관람자 간의 공감대를 현장에서 바로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소통 가능성을 보여준 작업이었다. 옥상에 개업한 식당을 찾는 도시 주변부 인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벼운 음악 소극 형태로 풀어낸 이 퍼포먼스에서도 작가 특유의 관점이 드러났다. 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번쩍이는 자본주의 삶의 시스템에서 비껴간 주변부 인물들의 이야기들은 삶에 대한 약간의 비애와 가벼운 희망을 함축하면서, 그들만의 살아가는 양태가 만들어내는 제3의 문화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들이 이 세대 젊은이들의 실제 삶과 닮아 있으며, 그것은 시트콤이나 광고 속에서 천편일률적인 화려함으로 소비되는 이미지나 검은색 디자이너 수트를 입고 전시 오프닝을 활보하는 미술계의 한정된 문화적 이미지가 아니라,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찾으며 미래를 고민하는, 이 시대 주변부 젊은이들의 삶이라는 보다 진정한 현실에 접속된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은주 (독립 큐레이터,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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